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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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법 상식 - 인종과 실력의 상관관계

2007-11-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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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LA타임스에서 아시안 아메리칸들이 중국에서 영어 강사 자리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태어나서부터 줄곧 영어만을 써온 대학 졸업자들이지만 중국의 어학원들은 이들을 제쳐놓고 백인 영어 강사들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들 백인 영어 강사들 중 일부는 심지어 대학도 다니지 않았지만 백인이기 때문에 강사 자리를 구하기가 쉬운 반면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너무 중국인처럼 보이기 때문에’ 강사직을 거부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실제 능력 보다는 겉모습을 더 중시하는 제3세계적 인식의 전형적인 예가 아닌가 한다.
여기에서 ‘중국인’을 ‘한인’으로 바꿔 생각해도 상황에 꼭 들어맞을 것 같다. 우리는 커뮤니티에서 이같은 일을 쉽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인이면 다’라는 무지하고 순진한 제3세계적 생각이 요즘도 많은 한인들에게 팽배해 있다. LA지역의 SAT 학원 광고들을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아시안 아메리칸 학생들이 SAT 시험을 포함, 학업에 뛰어나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그런데 한인 SAT 학원들이 광고에는 백인 강사나 백인 학생을 내세우는 것을 너무 자주 본다. 정말 한심한 것은 이들 학원들이 ‘백인’을 내세워 학부모들을 끌어들이려 할 뿐 아니라 학부모들도 ‘백인이면 다’라는 이 말도 안되는 개념에 속아 빠져든다는 사실이다. 정말 제대로 가르치는 학원이라면 이같은 속임 광고로 ‘백인이면 다’라는 생각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실제 자신들의 강점을 부각시키면 될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물론 SAT 학원들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백인이면 다’라는 낡아빠진 제3세계적 인식은 법조계에서도 만연하고 있다. 법조계에는 인종과 관계없이 좋은 변호사들도 많고 나쁜 변호사들도 많다.
법대 다닐 때 필자가 배웠던 한 교수님은 매우 훌륭한 변호사이자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분으로 필자가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존경하는 분이다. 그 교수님은 흑인이다. 우리는 종종 복잡한 소송 케이스를 맡아 공동 변호사로서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이기도 하다. 그런데 필자의 한인 고객들 중 몇몇 분은 필자가 이 흑인 변호사와 함께 앉아 상담을 하면 종종 뭔가 탐탁치 않다는 듯 동료 흑인 변호사를 완전히 무시한 채 필자에게만 이야기를 하곤 한다. 물론 이같은 냉랭한 태도는 필자의 동료 변호사가 말을 시작하는 순간 대부분 사라진다.
수 년간 변호사로 일해오면서 필자는 어떤 변호사가 좋은 변호사인지 나쁜 변호사인지는 피부색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늘 보아오고 있다. 어떤 변호사가 백인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능력 있는 변호사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백인이 아니라고 해서 능력 없는 변호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인들은 지금도 이같은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기 힘든 것 같다. 변호사가 필요하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주변의 경험자들에게 물어보는 것이고 해당 분야에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인종과는 관계없이. (213)637-8534
jong.lee@consciouslawyers.com

이종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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