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희 뉴욕시 교육청 학부모 조정관
나팅힐 게잇이라는 역에서 내리면 골동품(antique)과 다른 물건들을 파는 나팅힐 벼룩시장(flea market)이 있다. 내가 평소 좋아하는 벼룩시장에 가서 음식도 먹고 구경도 하고 북적대는 게 아주 즐거웠다.런던도 뉴욕 같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이는 국제도시로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 아주 다양했다. 서울과 도쿄처럼 점점 국제화 돼가는 런던의 이런 점은 뉴욕과 더욱 비슷해서 정답게 느껴졌다. 푸근했던 뉴욕과 달리 런던은 서늘해서 모두들 스웨터와 코트를 입고 있었다. 특히 남녀를 막론하고 스카프를 멋지게 두른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주일에는 딸과 함께 옥스퍼드 서커스에 위치한 역사 깊은 성공회(Anglican) 교회인 올 쏘울스 철치(All Soul’s Church) 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30명 정도의 단원으로 구성된 악단의 연주는 오케스트라와 재즈 밴드가 연합한 듯 아주 장엄하면서도 모던했다 실내는 고풍스러운 금장과 디테일한 인테리어로 돼 있었고 중앙에 있는 현대 조각물 같은 모형의 단상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성경봉독은 젊은 중국 여성이 영국과 중국 액센트가 둘다 가미된 아주 특이한 발음으로 용감하게 해냈다.딸이 학교에 간 시간동안 5파운드 70펜스를 내고 역에 있는 자동판매기에서 올데이 패스(All Day Pass)를 사서 하루 종일 버스와 튜브라고 부르는 지하철을 마음대로 타고 다녔다. 안내문도 잘 돼 있어서 이용하기가 좋았다.
테잇 브릿튼이라는 뮤지엄에 가서 밀리아이스의 그림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고, 관람 후 박물관 정문 길 건너에 위치한 선박장에서 올데이 패스소지자에 한해 2파운드 60펜스에 판매되는 승선표를 샀다. 부드럽게 항해하는 배를 타고 테잇 마던이라는 현대 미술 박물관에 갈수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박물관 구경은 못하고, 배에서 내려서 런던 브리지 역까지 걸어와서 지하철을 탔다. 오는 도중 보니 굴다리 아래 부분을 통째로 막아서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을 만든 것이 높다란 천정과 함께 아주 분위기가 있었다. 빅토리아 앤 알버트라는 뮤지엄에 가니 마침 도착한 시간이 미국 속옷 회사인 쟈키에서 공연을 보여주는 때였다. 박물관 전면에 휘장을 크게 두 줄로 내려놓고 그 위를 남녀 무용수들이 수평으로 춤을 추며 내려왔다. 허리에 묶은 케이블을 이용해서 신나는 음악과 함께 절묘하고 환상적인 공연이 이어져서 난 카메라 셔터를 쉬지 않고 눌렀다. 사람들이 박수 치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멋지고 기발한 공연이었다.
이 박물관의 입장은 무료였지만 특별전은 티켓을 구입해야 관람할 수 있었다. 사진작가인 리 밀러의 전시회와 1945년부터 1957년까지의 파리와 런던의 코튜어 전시회 티켓을 24 파운드를 주고 샀다. 먼저 코튜어 의상전을 봤는데 어두운 조명아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문-리버를 배경음악으로
각 벽마다 다른 앵글로 1950년대의 파리와 런던의 패션쇼 장면을 상영했다. 중앙에 전시된 의상들은 허리가 잘록하고, 장식이 많고 퍼지는 스커트와 모자까지 여성의 아름다움이 극도로 강조돼 세련미를 자랑했다. 구두와 장갑 그리고 음악까지 내 마음 한구석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름다운 노스텔지어가 나를 휘감았다.
원래 보석 디자이너가 직업이어서 그런지 영국에 가면 황실 보석과 왕관을 꼭 보고 싶었는데 마침 그 보석들이 런던 타워에 보관, 전시돼 있었다. 런던타워는 런던다리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원래는 타워 힐 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초행길이라 헤매는 바람에 런던 다리역에서 잘못 내
려서 버스로 갈아탔다. 너무 미리 내려서 비오는 날 우산을 펴들고 런던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그때는 고생스러웠는데 지금 생각하니 좋은 것 같다.
런던 타워에는 왕들이 갇혀 있던 곳이지만 일부 왕에 한해서는 사냥도 허락 됐다. 그들이 자던 침대 구조와 베개와 시트의 옷감 조각까지 잘 전시돼 있어서 한국 정부의 관광부서도 이런 곳에 와서 보고 많은 것을 배우고 개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왕관과 영국 왕실의 보석들이 전시되는 곳은 바닥이 움직여서 그냥 서있어도 스쳐 지나가야 했다. 앞뒤로 볼 수 있게 설치 돼 있어서 나는 세 번을 앞뒤로 구경 했는데 밤톨만한 다이아몬드와 루비와 사파이어가 너무 크고 영롱해서 정말 보석인가하고 실감이 안 났다.
돌아오기 전 날 며칠 전부터 딸은 이가 좀 아프다고 했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얼굴이 삐뚤어 질 만큼 부어서 갑자기 치과에 갔다. 사랑니가 염증이 생겨서 이를 빼야 한다고 했다. 청구서를 보고 기절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내가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 게 감사했다.뉴욕으로 돌아오는 아침에 학교 가는 딸과 역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와 빵 한 조각씩들 먹고, 지하철을 같이 타고 딸은 먼저 내렸다. 나는 레스터 스퀘어 역에서 피카딜리 선으로 갈아타고 히드로공항에 도착했다.
뉴욕 근처에 오니 비바람으로 비행기가 내리지 못하고 한 시간을 맴돌았는데 어찌나 흔들렸던지 먹은 샌드위치를 모두 토했다. 세상에... 20살때 처음으로 부산 가는 비행기를 탈 때 토하고는 처음이었다.
근데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두 딸을 낳을 때 마다 해산을 도우러 오셨고, 그 후에도 날 보러 여러 번 방문하셨다. 비행기 타는 걸 겁내 하시고 비위가 약하신 어머니가 딸 보고 돌아가는 길에 이런 심정 이었을 것을 생각하니 속이 울렁대는 데다 눈물이 났다. 이해한다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더욱 불편한 일인 것 같다. 눈가가 자꾸 적셔 지니까...
그래도 이번여행이 나에게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고 발전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말로는 외롭고 집 생각이 난다고 하면서도, 독립을 은근히 즐기며 잘 하고 있는 딸을 보고 오니 마음이 훨씬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