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작이 반이다

2007-11-0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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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는 김수임은 어느날 그림을 가르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지 3년이 된 화가이다. 꽃과 새를 즐겨 그리는 그녀의 그림은 미술대학에서 그림을 전공한 화가들의 그림보다 자유롭고 순진하다. 그리고 싶은 마음을 마음껏, 법이 없이 그리다보니 생생함이 넘친다.
몇 해 전 로터스화랑에서 전시한 화가 제니퍼 박도 같은 경우다. 당시 양품점을 하던 그녀는 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다가 양품점과 집의 코너에 화실을 마련해놓고 꾸준히 몇 년을 그려 전시했는데 그 진지함과 소박함이 소위 화가라고 활동하는 사람들보다 돋보였다. 특히 수국을 그려놓은 정성을 잊을 수 없다.
민화가 풍미하던 이조시대의 그림처럼 소박하고 화사하고 천진스런 화풍은 미술대학에서 교육받지 않은 화가들에게 드러나는 독창성이다.
내가 잊지 못하는 미술선생님은 80이 넘은 할머니 화가였는데 고운 얼굴에 고운목소리로 “Art is spiritual!”(예술은 영적이다)이라고 강조하셨고 미술대학에서 배운 것 씻어 내는 데 10년이 걸린다고 하셨다.
회계사인 친구는 지난 몇 년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커뮤니티 칼리지의 드로잉 클래스를 꾸준히 다녔다. 미술대학에 다녔으나 사정상 회계사가 되어 늘 그리운 미술에 대한 꿈을 그렇게 남모르게 키웠는데 동문전에서 본 그의 그림은 정말 귀한 시간을 쪼개 몇년씩 소망하며 그린 사람의 그림답게 고결하고 정화되어 있으며 순수하고 깊은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계속 전시하며 그림을 파는 직업 화가들의 그림이 어떤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면 그런 그림은 단 한 장이지만 오래고 순수한 미(美)에의 모색을 담고 있어 신선하다.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음악이 좋아져서 커뮤니티 칼리지에 일주일에 한번 다닌다는 친구도 있고 목수 일을 하다가 그림이 하고 싶어져서 산타모니카 칼리지를 3년이나 다닌 화백도 있다. 그는 젊은이처럼 백팩을 매고 학교에 가는 게 즐겁다고 했다. 60이 넘으면 주립대학도 학비 없이 다닐 수 있다고 기다리는 친구도 있다.
누구나 막연히 그림을 그리고 싶다 혹은 음악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이들 가르치는 데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 엄마들이 자신을 위한 투자에는 인색하다. 나는 엄마들에게 애들은 알아서 미국 교육 잘 받고 잘 살테니 1세인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라고 얘기한다.
무엇이든 한 가지를 시작하여 1주일에 세 시간, 10년을 투자하면 그 나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처음에는 재미있다가 한 6개월이 지나 뭘 좀 알게 되면 그때가 가장 중요한 고비이다. 갑자기 어려워지면서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되는데 그때 그만 둬 버리기가 쉽다. 한번 그만두면 다시 잡기 힘듦으로 한번 시작한 것은 적어도 10년은 계속한다는 각오로 해야 한다.
미와 진실, 순수를 생각할 수 있고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인생은 짧다. 돈버는 일만 하고 가기에는 인생은 너무나 고귀하다.
요즘 본 영화 ‘유럽의 강간’(Rape of Europe)에서는 먹고 자고 일만하는 사람은 돼지와 같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심하게 얘기할 수 있구나 하고 내심 놀랐지만 예술을 모르고 가는 인생, 즉 미와 순수, 영혼과 인간의 문제를 사색하지 않는 삶은 삶다운 삶이 아니다.
시작이 반이다. 미국은 정말 교육시설이 잘 되어있다. 미국생활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공부하지 않은 것이라고 20년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 친구가 공항에서 말했다.
요즘 내 얘기를 듣고 사진과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여사장님은 늘 싱글벙글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긴 처음이라며 사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고 한다.
시작이 반이고 한번 시작했으면 묵묵히 끝까지 가야한다. 무언가 하나에 미쳐서 서서히 느끼기 시작하는 그 기쁨의 경지,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눈이 뜨이는 것, 순수예술의 바로 그 순수라는 말의 신선하고 심오한 뜻을 일상에서 느낄 때의 기쁨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박혜숙 /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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