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필라 최초 여성 판사 리자 리체트 판사 별세

2007-10-30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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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 시 최초의 여성 판사로서 강간 피해 여성과 학대 받는 아동을 위해 큰 발자국을 남긴 리자 리체트 판사가 지난 26일 사우스 필라에 있는 호스피스인 세인트 아스네서 간호 센터에서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
리체트 판사는 학생 시절부터 지난 8월 외동아들(48)에게 구타당해 눈썹 주위를 꿰매는 일까지 평생 동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사우스 필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했던 이탈리아 계 부모사이에서 태어난 리자 아버사 양은 펜 대학을 다닐 때 유태 계 어빙 샌들러 씨를 만나 결혼했다. 그러자 리자 양의 아버지는 후에 유명 미술 비평가가 된 사위가 유태인이라면서 딸과 의절했다. 리자 양은 첫 번째 결혼을 몇년만에 끝내면서 “우리는 너무 어렸다”고 말했다. 그녀는 곧 예일 대 법대에 진학해 1952년에 졸업한 뒤 예일 대에서 형사 법 교수가 됐다.

그러나 로펌에서 여성 변호사를 채용하지 않던 시절인 1954년 필라 시로 돌아와 필라 검찰 패밀리 담당 부 검사가 됐으며 1958년 로렌스 자비트 리체트 변호사를 두 번 째 남편으로 맞아 말썽 많은 외동아들 로렌스를 낳았다. 리자 리체트 검사가 13년 뒤 이혼하고 베로 아젤로 씨와 3번째 결혼하자 전 남편 리체트 변호사는 전 부인에게 앞으로 ‘리체트’라는 성을 사용하지 말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때 리자 검사는 “내가 리체트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졌기 때문에 이를 계속 사용 하겠다”고 주장해 법원의 승소 판결을 받았다.


리자 리체트 검사는 1971년 필라 시 민사 법원 판사로 임명됐다. 그녀는 그 후에도 화려한 옷차림과 요란한 파티 등을 개최해 눈길을 끌었다. 또 70세가 넘어서도 헬스클럽 수영장에 비키니를 입고 나타났으며 비키니 위에는 검은 색 판사 복(법복)을 걸쳐 구설수에 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학문적으로 뛰어났다. 지금도 대학 교재로 사용되는 저서 ‘버림받은 어린이’(Throwaway Children)를 썼다. 또 1978년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은 리자 판사를 미 최초의 연방 법원 판사로 임명하려고 했으나 리자 판사는 우울증을 갖고 있다고 공개하면서 스스로 대상자 명단에서 빠져나갔다.

리자 판사는 지난 8월 외아들에게 얼굴을 구타당해 제퍼슨 병원에서 4바늘을 꿰맨 뒤 폐암 4기라는 것을 알았다. 식사 도중 담배를 피울 정도로 골초였던 리자 판사는 호스피스에서 사망하기 이틀 전 외아들의 방문을 받고 “네가 와 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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