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크로 - 영업시간
2007-10-18 (목)
달력에 빨간 글씨가 있는 날이 기다려지는 것이 모든 이들의 마음이지만 특히 월급쟁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것이 공휴일일 것이다.
요즘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샌드위치 데이로 휴가를 즐기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아니 오히려 설이나 명절이면 3일씩 화끈하게 쉬는 건 한국이므로 이곳에서 헷갈리는 때가 있다.
사실 추석은 이곳 타운의 분위기로 지내고 추수 감사절은 당연히 미국이니까 지내고 이래저래 양쪽으로 먹고 모이고 푸짐한 건 사실이다.
공휴일이 다가오면 직원들이 신나게 회사 문 앞에 휴일에 쉽니다라는 영어 문구의 사인을 붙이는데 뭐라 지시할 필요도 없다. 정리정돈이나 다른 일에 이토록 적극적으로 한다면 하는 생각이 들만큼….
그러고도 연휴 전날이면 마음이 들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지 서로 눈치를 보고 난리들이다. 바쁘지 않는 오피서와 그 사무실은 서로 사다리를 타는데 목숨을 걸고 덤비는데 손님에 대한 배려를 하는 마음이 아쉬울 때가 있다.
6개월이고 1년이고 나타나지 않던 셀러나 바이어가 서류의 픽업을 위해 공교롭게 들르기도 하고 급하게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아무리 손님이 2시에 약속을 하였어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4시에 연락 없이 오는 경우도 있고 이미 멀리서 출발하여 오느라 통보 없이 찾아오는 일도 있다.
영업시간은 약속시간이다.
지난 달 한 사업체의 매매에 예기치 못한 셀러의 행동으로 바이어가 소장을 보내는 일이 있었다. 테리야끼를 메뉴로 하는 식당으로 주인인 셀러가 거의 업소에 나오지 못하는 사정으로 이미 에스크로가 열렸으니 어차피 매달 적자 운영이므로 종업원 다 쉬게 하고 매상 점검 후 가게의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아무리 현재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어라 하더라도 사업체가 정상적으로 운영돼야 하는 것이 상례이건만 셀러의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누구나 사업체를 계약하고 나면 수없이 가게를 가보고 동네를 돌아보고 요리 조리로 알아보는 것이 보통 바이어가 하는 일이고 셀러는 이미 마음이 떠났어도 평소대로 운영을 해야 하는 것이 의무이다.
아니 내 맘이지 무슨 소리냐고 하는 셀러도 있지만 ‘정상적 영업시간’에 대한 조항은 에스크로 서류에도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셀러는 에스크로 기간 내에 어떠한 눈에 띄는 변화나 수정도 인수인계가 끝날 때까지 바이어의 허락 없이 할 수 없으며 이는 ‘권리금’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대부분의 내용이다.
아무리 사람 마음이 자기 편한 대로 무엇이든 해석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미 서명된 서류에 “모르는 내용”이라든지 보지 않고 사인해서라는 말은 옹색한 변명으로 될 수밖에 없다.
장비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기계와 장비, 설비 등은 있는 그대로 바이어가 인수받는다 해도 작동에 하자가 없어야 하고 업그레이드나 보완을 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라고 봐야 한다.
’As-is’이냐 ‘working condition’인가 하는 것이 결코 상반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바이어와 셀러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업장의 영업시간이 그전 그대로 이어야 하고 기계도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지 그 어떤 변화나 비정상적인 탈바꿈이 있어서는 클로징에 지장을 야기한다.
바이어의 항의가 빗발치고. 건물주의 질책으로 리스를 받는 데에도 문제가 생기므로 급기야 가족이 총동원되어 다시 식당을 오픈하고 부랴부랴 정상적인 영업을 하느라고 이전보다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을 들이는 셀러를 보면서 자칫 바이어까지 등을 돌리는 것은 아닌지 사실 걱정이었다.
다행히 큰 포부를 가지고 식당을 키우고자 하는 바이어의 너그러운 마음과 건물주의 이해로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더 많은 수고와 비용을 들인 셀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제이 권 <프리마 에스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