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온경<데이비슨 초등학교 도서미디어 교사>
③프랭클린 루즈벨트(FDR) 대통령의 일생 : 인생의 전환점과 그의 업적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FDR)은 1882년에 허드슨 강 북쪽에 위치한 하이드 팍 소재 큰 저택에서 출생하였다. 하나밖에 없는 자녀였던 그는 어머니와 함께 독서를 즐기고 교회에 함께 다녔다. 어머니가 가난하고 불우한 이들에게 음식과 옷가지, 꽃등을 보내는 것을 보고 자란 프랭클린은 크리스마스 때면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그 지역에 사는 근로자들의 자녀들에게 직접 장난감 등의 선물을 나누어 주곤 했다.
프랭클린은 가정교사에게서 교육을 받았으며 가족들은 물론 집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서도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프랑스어 가정교사로부터 프랑스어 뿐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배웠다
프랭클린은 14살에 처음으로 그로톤이라는 기숙사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급우들은 두 살이 더 많은 프랭클린을 따돌렸다. 그들은 프랭클린의 프랑스어 악센트, 공손히 절하는 것, 심지어는 항상 정시에 도착하고 열심히 수업에 임하는 것조차도 놀려댔다.
프랭클린은 스포츠를 통해 학교에 적응하려고 노력했고, 그로톤 학풍을 몸에 익히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며, 드디어는 급우들로부터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그로톤 학교의 교장은 학생들에게 주지사나 상원의원이 돼 나라를 위해 일하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프랭클린은 그의 부모가 정치계 입문을 달갑지 않게 여겼기 때문에 처음에는 정치에 뜻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위해 학교의 논쟁(Debate) 팀에 들어갔다. 그는 논쟁을 아주잘 했는데, 이는 저녁 식사 때마다 부모님이 프랭클린에게 자신의 의견을 잘 표현할 수 있게 북돋아주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프랭클린은 교육가 부커 워싱턴이 자신이 노예였던 시절에 대하여 연설하는 것을 듣고 많은 충격을 받았다. 그 당시 뉴욕시 경찰국장이었던 프랭클린의 5촌 아저씨뻘인 시어도어 루즈벨트도 그로톤에 와서 연설을 하였다.
1898년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뉴욕 주 주지사 취임연설을 들으러 간 프랭클린은 시어도어에게서 큰 감명을 받았다. 16세의 프랭클린은 점점 더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에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서 남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운 프랭클린은 16세 때부터 이를 실천하기 시작한다. 그는 주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반주도 맡았다. 또한 보스턴 빈민가의 소년들을 위한 캠프에서 두해에 걸쳐 여름 동안 수상 스포츠를 가르치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프랭클린은 해군장교의 꿈을 접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버드 대학과 컬럼비아 법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엘리노어와 결혼한 후에는 뉴욕 주 주지사가 됐다, 39세에 그는 소아마비에 걸려 평생 휠체어를 타게 됐다. 그러나 그는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12년후 프랭클린은 미국의 32대 대통령이 되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공황(1929년에서 -1939년까지 많은 미국인들이 직업을 잃었음.)과 제 2차 세계대전에 처한 미국을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다. 1932년 후버 대통령과 대통령 선거전을 치르고 있었을 때 직장이 없어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에게 최초로 사회보장제도와 실직 보험제도, 농민들을 위한 농산물 가격보조, 근로자들을 위한 최저임금책정, 예금보험, 주식시장의 법규 등을 도입한 뉴딜 정책을 약속하여 선거에서 대 승리를 거두었다. 1933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그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명언을 남겼다. 39세 이후로 평생 소아마비와 싸워야 했던 프랭클린은 실제로 어려움에 빠진 국민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동
정했으며, 부인인 엘리노어와 함께 그들을 돕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그들의 노력으로 상황이 많이 호전되었다.
1940년에 프랭클린은 3선 대통령이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유럽에서 발발하자 프랭클린은 영국에 극적인 원조를 제공하였다.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다음날 그는 일본에 선전포고하였다. 그는 세계평화를 위해 미국이 세계대전에 참가, 연합군의 일원으로 일본, 독일, 이태리를 상대로 싸우게 이끌었다. 방위산업의 고조로 미국의 많은 실직자들이 취업을 하게 되었으며, 그 후 프랭클린은 미국이 산업화와 군사기동력으로 민주주의를 성장시키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1944년부터 건강이 악화된 프랭클린은 4선에 성공했으나, 45년 연합군이 유럽에서 승리하기 몇주 전 뇌출혈로 인해 63세를 일기로 사망한다. 프랭클린은 미국역사상 보기 드문 위대한 대통령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프랭클린의 전기를 읽고 나서 어린 시절 그의 성품을 빚어준 그의 부모님, 가정교사들, 그리고 그의 인생항로의 전환점이 되어준 교장선생님과 시어도어 루즈벨트, 또 그의 평생 반려자로 그의 두 다리가 되어준 엘리노어 루즈벨트 여사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가 처했던 여러 어려움들에 도전, 승리한 그의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우리의 자녀들이 남을 생각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같은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를 자녀들과 같이 읽고, 그들의 생가나 기념관 및 도서관 등을 함께 방문하여 그들의 삶의 자취를 직접 느낄 수 있는 산교육을 체험할 것을 부모들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