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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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업/ 헤릭스 고교 12학년 안혜림 양

2007-10-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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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양손만 사용하는 다른 악기들과 달리 손과 발을 조화롭게 사용해야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이 드럼의 매력이기도 하죠. 재밌잖아요.”

실력 있는 여학생 드러머로 뉴욕 일원에 이미 명성이 자자한 안혜림(16·사진·헤릭스 고교 12학년)양. 언뜻 소리만 들으면 연주자가 설마 여학생이라고 상상하기 힘들 만큼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실로 대단하다. 베이스 드럼을 치는 발의 규칙적인 움직임에 맞춰 두 손에 쥔 드럼 채로 스내어드럼과 심벌을 현란하게 내려치는 모습은 과히 일품이다. 분주한 손발과 달리 얼굴에 담긴 여유로운 표정 또한 압권이다.

7학년 때 시작한 드럼을 배우기까지는 나름대로 부모(안진석·장덕순)와 모종의 합의(?)를 거쳐야 했다. 여학생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부모와의 반복된 입씨름 끝에 바이올린 레슨을 함께 배우는 조건을 받아들이고서야 드디어 드럼 채를 양손에 쥘 수 있었다. 태권도가 배우고 싶었던 초등학교 3학년 때에도 워낙 거친 운동을 좋아하는 딸이 너무 남자처
럼 자랄까 염려했던 부모덕에 당시에도 역시 극과극의 성격인 발레와 태권도를 함께 시작해야 했다.


그렇다고 부모가 고리타분하다고 불평한 적은 없다. 다른 많은 한인 부모들처럼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이나 전문직 진출은 절대 강요하지도 않고 그저 자식이 원하는바 그대로를 인정하고 스스로 설정한 미래의 꿈을 키워가도록 100% 지원해 준다는 점에서는 만점짜리 부모라고. 스스로 생각해도 고등학교 10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그다지 공부에 열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6학년이 되던 해인 5년 전 하나 뿐인 오빠(당시 12학년)를 교통사고로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일이 두고두고 어린 마음에 충격으로 남아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던 것이다.

갑작스런 오빠의 사고사 이후 3개월 뒤 자신도 큰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졌고 이때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기나긴 힘든 고통의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부모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래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일찍 겪은 탓일까? 친구들보다 조금은 앞서 철이 든 탓에 늘 부모
에게 좋은 딸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특히 이번 여름에는 ‘유스&패밀리 포커스’ 기관을 통해 ‘광야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도 한층 트였다.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세상이 그리 각박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처음 깨닫게 됐다. 고교생답지 않게 무척 어른스럽고 확고한 인생 모토도 갖고 있다. 바로 ‘스스로 대접 받으려 하기 전에 남을 먼저 섬기며 살자’는 것이다.

드럼은 평생 즐기고 싶은 악기지만 정작 장래 희망은 법대에 진학해 변호사가 되는 것. 이 또한 어느 누구의 강요도 아닌 스스로 좋아서 설정한 목표다. 대학에서는 영어학과 역사학을 복수전공하고 싶지만 자신의 인생 모토를 실천하며 살다가 어느 때이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면 장차 신학대학원에도 진학하겠다는 계획이다. 물론 부모도 이제 외동딸이 된 자식의 이런 장래 계획을 적극 지원하는 입장이다.

5세 때 미국에 온 1.5세지만 한국말 구사도 능숙하다. 학교에서는 배구팀 대표선수로, 기독교 클럽과 한인학생 클럽, 모의재판 팀 등에도 몸담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교회(퀸즈중앙장로교회)에서는 고등부 학생회장과 찬양밴드 드러머로도 봉사하고 있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배우는 것을 즐기다보니 오는 11월로 예정된 SAT 시험을 앞둔 바쁜 수험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요즘에는 핸드볼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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