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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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크로-고향 길, 고생 길

2007-09-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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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추석에 모두들 풍성하고 떠들썩하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도 간편하게 송편을 사먹고 명절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재미있지만 사실 그리된지도 오래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 때만 되면 한번쯤 하늘을 바라보며 고향 생각을 하고 어머니 손맛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았다. 요즘은 고령의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하고 퇴근 때 떡 집에서 종류별로 사들고 들어가는 신(新)효도 족들이 늘었다.
살던 집을 정리하려면 예기치 않게 한국에 갈 일이 생기고, 재산 정리 때문에도 가야하고, 사업체 사려는데 자금 때문에도 피치 못하게 장거리 여행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큰 일을 앞두고 혹은 그 전후로 누구나 충전의 시간을 갖고 싶어하고 그 야무진 계획은 늘 뜻하지 않는 날짜와 맞아떨어지므로 난처할 때가 있다.
“제가 없는 동안 항상 그렇듯이 남편이 대신 서명해도 되지 않습니까?”라든지 “서류에 모두 미리 서명하고 가고 싶은데요”라며 공항 가는 길에 에스크로 사무실에 약속하고 싶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아니면 확실히 월말 전에 돌아오므로 괜찮다고 큰소리치며 여행을 떠나는 분도 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남이 대신 서명하는 것을 매우 불편해하는 마음도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에스크로의 모든 사항은 등기가 되어 공공 자료가 되기 전에는 절대 비밀 보장이 되어야하므로 자신 외에는 누구에게도 오픈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 상례이기도 하다.
사업상 혹은 집안 일로 장거리 여행을 할 경우에는 예기치 않은 경우에 대비하여 위임장을 마련해 놓는 것이 지혜롭다.
부동산 에이전트에게 전화로 ‘OK’한 사항에 나중에 서로 불만이 있을 수도 있고, 아무리 부부라도 대신하는 서명은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바이어의 경우에는 스페셜 위임장을 해놓아야 융자 서류에 사용될 수 있고, 부동산매매의 셀러는 일반 위임장이 필요하므로 직원과 사전에 상의를 하는 것이 좋다.
바이어나 셀러는 이미 떠나고 에이전트나 가족으로부터 잘못된 위임장을 받고 난감할 때가 있다. 미국령을 제외한 어느 해외 국가에서도 등기 서류들은 반드시 미국 대사관이나 영사관내의 공증인의 것만이 허용된다.
서울의 대서소 사무실에서 화려한 금딱지까지 붙인 공증 서류라 해도 등기에 퇴짜를 받는 것에는 예외가 없다.
자녀의 결혼으로 어렵게 팔린 집의 에스크로를 오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8월초에 한국에 나가신 신 선생님은 시설 좋고 말도 편한 병원에서 내친김에 건강 진단을 받으셨는데 뜻하지 않게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요즘은 모든 서류들이 이-메일로 전달이 가능하므로 사실 시간이 반은 줄은 셈이지만 편찮은 몸으로 미대사관에까지 가서 공증을 받아야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고 결국 클로징 날짜를 2주 이상 미루고 있는 형편이다.
주위의 권유대로 혹시 모를 위임장을 해놓았다면 마음을 졸이고 비싼 국제 전화료를 지불할 필요도 없었는데….
지금에는 바이어가 마음을 바꿀까봐 걱정이고 이것저것 집안의 문제들에 제대로 답변도 못하고 그저 무작정 업자들 청구대로 확인 없이 지불할 일이 끔찍하고 몸은 아프고 지옥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한치 앞을 알 수도 없는 이민 생활이라고 하면 사실 무지 살벌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모든 인간사가 마찬가지가 아닌가.
외국사람들은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도 유서에, 위임장에, 재산명세서에 대한 자세한 내역까지 변호사에게 남기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가을 하늘이 높고 아름다운 한국이 많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왔다.
TV에서 소개하는 음식은 또 왜 그리도 먹음직스러운지, 여기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길거리의 포장마차의 떡볶이와 오뎅 국물에 침이 고여 늦은 밤 라면이라도 끓여야 한다.
즐거운 여행을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발걸음을 위해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모두를 배려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고국이나 해외 여행이 고생길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jae@primaescrow.com
(213)365-8081
제이 권 <프리마 에스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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