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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님들과 자녀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미국의 역사와 문화기행

2007-09-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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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루벡 기념도서관을 방문하고

주온경(데이비슨 초등학교 도서미디어 교사)

필자는 새로운 곳을 여행할 때마다 공공도서관을 발견하면 꼭 들리는 습관이 있다. 공공도서관에서 그 고장의 분위기를 한눈에 접할 수 있을 뿐더러 사서들과 대화도 나누고 뜻하지 않게 희귀하고 귀중한 자료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본성에 공공도서관의 사서로 일한 경험과 현재의 직업이 도서미디어 교사인지라 도서관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인가보다.

루벡에서 해돋이를 보고 한적한 거리를 거닐다가 조그만 단층 건물에 있는 루벡 기념도서관의 간판을 보고 들어가 보았다. 들어가자마자 두 명의 사서들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이어서 눈에 뜨이는 것은 바구니에 가득 채워진 오이들과 우리 집 밭에서 오이가 많이 열렸으니 마음대로 가져가세요 라는 문구였다. 아담한 내부에는 노트북 컴퓨터를 가지고 열심히 무엇인가 하고 있는 주민들과 검정색 가죽소파에 앉아서 잡지를 읽고 있는 주민들이 보였다.


자료실에서 루벡시의 역사에 관한 자료를 발견하여 이 도서관이 어떻게 지어지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한 내력을 소개하고자 한다.
2001년에 지어진 현재의 루벡 공공도서관은 1946년에 루벡 소재 기독교 교회의 한 목사와 뜻있는 루벡시 시민들에 의하여 루벡 기념도서관을 위한 협회가 형성되면서 메인 주에 등록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도서들은 메인 주 도서관에서 배달되어왔으며 도서관 건물이 없어 주점의 한편을 이용해서 책을 보관하고 주민들에게 대출하였다.

1949년에 루벡의 한 의사의 부인과 그녀의 친구들이 마을의 주민들에게 도서관의 영구장서를 보관할 장소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한 결과 큰 호응을 받아내었다. 마을의 자원봉사자들이 새 장소를 찾아 보수하고 마을의 상인들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도서관을 채울 장서들을 기부하였다.

수년 후 도서관의 장서들은 맥커디의 훈제소가 있는 사무실로 이전되었는데 1961년에 스쿨스트릿에 있는 집을 도서관으로 쓰기 위해 5000달러에 구입하게 되었다. 섬너 파이크라는 사람은 자신이 죽기 전까지 이 도서관의 성인부를 위해 많은 책을 기증하였고 이 도서관에 기부되는 돈과 같은 액수의 금액을 기부했다. 파타임 사서가 일주일에 사흘씩 오후에만 도서관 업무를 보았다. 1980년대 말 도서관은 급성장하게 되었으며 대출이 증가했고 면적도 확장되었다.

1997년에 힐다 뱅스라는 여자가 새 도서관의 건립을 위해 20만달러를 쾌척하겠다는 유언을 했는데 단 자신이 사망한지 4년 이내에 공사를 시작하여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이것이 촉매가 되어 도서관 위임위원회, 직원들, 마을의 자원봉사자들이 한 마음이 되어 마땅한 장소를 찾고, 도서관의 디자인을 하며, 21세기를 살아가는 도서관 이용자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새 도서관을 위한 충분한 자금조성을 위해 한 마음으로 일한 결과, 기금조성, 유언집행을 위한 투표, 기부금, 많은 사람들로 부터의 시간 및 자금 지원이 이루어져 2001년 7월4일에 주민들이 염원하던 새 도서관이 현재의 장소에서 문을 열게 되었다.

루벡 기념도서관은 바닷가에 위치한 아담한 자체 건물에서 루벡과 인근의 주민들에게 여러 가지 종류의 자료와 미디어를 공급하고 있으며, 서비스 인구가 1650명으로 지난 해 5,158명이 방문했고, 총 1만9,049권의 장서 중에서 1만8,490권이 대출됐다. 도서관은 1명의 풀타임 사서와 1명의 파타임 직원에 의해 운영되는데 두 명다 자원봉사자다. 직원용 컴퓨터 1대와 이용자를 위한 컴퓨터가 4대 있으며 전자서비스와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수잔이라는 풀타임 사서는 루벡의 자연환경이 좋아 평생 살아온 이곳을 떠날 수 없다며 도서관에 대한 강한 애착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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