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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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만난 한인들

2007-09-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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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느 나라를 다녀보아도 언제나 느끼는 것은 “아! 아메리카가 제일이야”라는 것이다. 부지런하고 법을 어기지 않으면 의식주가 보장되는 곳이 미국이라 생각한다. 더욱이 이곳 캘리포니아는 자연환경이 좋아서 사시사철 골프는 말할 것도 없고, 수영과 스쿠버다이빙을 즐길 수 있고, 한 시간만 운전해 나가면 스키도 탈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말이나 연휴가 되면 별 부담 없이 바닷가로, 골프장으로, 스키장으로 여행을 떠나곤 한다. 한인들도 많이 여행을 다녀서 이제는 어디를 가든 한인그룹 한둘을 안 만나는 때가 없다.
지난 노동절 연휴 때였다. 날씨가 무척 더웠는데 마침 한국에서 손님들이 방문하여 북쪽 샌타마리아라는 곳으로 피서 겸 골프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느껴지는 짜릿한 흥분, 백가지 보약보다 좋다는 엔돌핀이 마구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골프 이틀째 되는 날 아침 8시 티 타임에 맞춰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뒤로 미니버스 한 대가 당도하여 40여명이 족히 되는 한인들이 쏟아져 내렸다. 한인사회에 잘 알려진 어느 봉사단체 이름이 적힌 티셔츠들을 입고 있었다.
나는 괜히 걱정이 되었다. 얼마 전 우리도 큰 버스를 전세 내어 골프여행을 갔는데 우리 일행이 한국사람 특유의 큰 목소리로 프로샵에서 떠들어대니 옆에 있던 미국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자리를 피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너무 민망해서 “단체여행 때는 특히 조심해야 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수가 많으면 아무래도 시끄럽고 남들 눈에 쉽게 띄기 때문이다.
우리 뒤에 도착한 이들도 왔다 갔다 한동안 부산하더니 남자들이 제일 앞에 있는 카트로 향하며 여자들에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 “빨리 빨리 나가자.”
그러더니 골프채를 싣고는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아차 하는 순간에 우리 카트는 온데간데없고 남은 것은 줄지어 선 그 봉사단체 이름의 카트들뿐이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그들에게 달려가 “이 시간은 우리 티타임이다. 이 카트도 우리 이름이 적힌 것이다”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리보다 한참 젊은 연배인 그들은 무조건 골프채를 휘두르며 그냥 나가려 하는 것이었다. 말로 싸워 보았자 득이 될게 없어 카트 앞에 걸려 있는 이름표를 떼어다가 보여 주니 그제야 물러서면서도 무어라 짜증을 냈다.
같은 한인들끼리 낯선 곳에서 만나 서로 양보는 못할망정 이런 예의 없는 행동을 해야 할까. 적어도 봉사단체의 이름 아래서 말이다. 봉사단체 회원이라면 봉사에 앞서 우선 남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설사 우리가 나중 순서였다 하더라도 우리는 수가 적고, 연배가 위이니 빈말이라도 “먼저 나가시라”고 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국에서 오신 분들 앞에서 이곳 한인들의 여유 있는 면모를 보여주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이 축복 받은 땅에서 살면서 우리가 좀 더 겸손과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 앞에서는 내심 이곳 한인들의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다 보니 어깨가 축 늘어지고, 무례한 그들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에바 오 /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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