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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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크로

2007-09-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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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정, 오는 정

우리 교회도 주일에 샘터별로 돌아가며 정성껏 마련한 점심을 모두가 대접을 받는다.
조금 거금을 투자한 경우 삼계탕이 나올 때도 있고 불고기 덮밥, 비빔밥 등 기다려지는 시간인 것은 틀림없다.
한 지붕 세 가족으로 한어 회중과 미국 회중, 그리고 영어를 사용하는 1.5세와 2세들의 영어 회중까지 각기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세 그룹이지만 음식을 나누는 데에는 벽이 없다.
한국말을 한 마디도 못하는 한인 학생들이 시뻘건 비빔밥을 가지고 농구장으로 뛰어가고 미국생활이 짧은 한 집사님이 크림 바른 베이글을 맛있게 드시는 것이 주일에 흔히 보는 우리 교회만의 풍경이다.
이따금 인원에 맞게 준비한 비빔밥이 2세 아이들 때문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불평(?)이 나올 때도 있지만 그것도 애들이 잘 먹어서 귀엽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고 청년 아이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진심을 알기 때문이다.
사업체를 매매할 때에 바이어는 계약된 금액을 지불해야 하고 셀러는 계약서에 적힌 조항들대로 장비와 노하우를 바이어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말처럼 제대로 이행되기는 늘 어렵다.
시간에 맞추어 클로징을 준비하는 바이어가 많지 않아서 늘 셀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연결된 매매건이 지연되거나 계획에 차질이 생겨 약이 많이 오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융자가 어려워진 요즈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당당한 바이어가 주는 것 없이 밉상스러운 셀러는 장비세금 정산에나 트레이닝에 불편한 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바이어가 세금을 얼마를 내건 세무사와 상담도 하지 않아서 문제를 만들기도 하고 일단 에스크로가 끝난 후에는 제대로 인수인계를 하지 않아서 직격탄을 날리는 것이다.
이런 경우 바이어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세금 때문에 정리되지 못한 셀러에게 제대로 사인에 협조하지 않기도 하고 변호사를 통해 정식으로 문제를 삼기도 한다.
몇 번의 매매 경험으로 상호 협조가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셀러나 바이어의 경우에는 사뭇 진행 스타일이 다르다.
시간에 맞추지 못할 만큼 융자가 늦어지는 경우에는 셀러에게 찾아가서 양해를 구하기도 하고 어차피 노는 시간 무보수로 셀러를 도우면서 친분도 쌓고 미리 인수하는 노하우도 쌓는 지혜를 발휘한다.
함께 일하면서 인간적인 정이 생긴 양 진영에 다툼이 있거나 신경전을 벌이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가게나 회사 안의 작은 집기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다른 팀들과는 달리 서로 주지 못해 야단이다.
에스크로에 클로징을 위해 함께 오기도 하여 서로 위해 주느라 닭살인 분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다.
어차피 떠나는 사업체에, 시작하는 바이어를 위해 베푸는 넉넉한 마음의 셀러가 되는 것은 종이 한 장의 차이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생기게 만드는 것은 진심으로 셀러를 위로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바이어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사들고 한 가지라도 배우려 찾아오는 바이어에게 영업에 방해된다고 박대하는 셀러보다는 형제 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분들이 아직은 더 많다.
후에 셀러의 중요한 메일이나 물건을 꼭 챙겨서 전해 주는 바이어를 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 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자칫 딱딱하기 쉬운 에스크로 사무실이 화기애애한 장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덩달아 품위 있는 매매질서 문화가 이어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jae@primaescrow.com (213)365-8081

제이 권 <프리마 에스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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