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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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님들과 자녀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미국의 역사와 문화기행

2007-09-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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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최동쪽 끝 루벡을 방문하며

주온경(데이비슨 초등학교 도서미디어 교사)

9월은 긴 여름방학을 보낸 자녀들이 개학을 맞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분주한 때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여름방학동안 새로이 경험한 내용에 대해 글을 쓰는 습관을 갖도록 권장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여행을 가기 전 방문할 곳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해 여행 가이드를 미리 읽고, 여행 중에는 방문하는 지역을 지도에서 찾아보며,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메모나 방문지에서 가져 온 자료들을 보며 기행문이나 감상문을 써보는 것은 작문실력 향상에도 좋을 뿐더러 인생의 좋은 기록이 될 것이다.


필자가 이번 여름에 가족들과 함께 자동차로 여행한 코스는 7박8일 동안 뉴욕에서 매사추세츠를 거쳐 뉴햄프셔를 지나, 메인의 동쪽 끝에 자리 잡은 루벡이었다. 이곳에서 관광을 한 뒤 다리 하나를 지나 국경을 건너면 캐나다의 뉴브런즈윅에 도착해 이곳에서 페리를 타고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도착하면 빨간머리 앤의 저자인 엘 엠 몽고메리가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보낸 그린 게이블스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서 다시 페리를 타고 노바 스코샤를 향하면 탐험가 존 캐봇의 이름을 딴 캐봇 트레일(Cabot Trail)을 따라 운전하며 북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절경을 바라보고, 다시 뉴브런즈윅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조수간만의 차가 크다는(9미터) 펀디 국립공원에서 조수로 인해 화분처럼 깎인 9미터 높이의 바위를 내려다보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매사추세츠에서 미국 독립운동의 발발지인 렉싱턴과 콩코드시를 답사하고 엠허스트에 위치한 아동작가 에릭 칼 그림책 박물관과 스프링필드에서는 닥터 수스의 야외 조각 기념관을 관람하고 돌아오는 총 2400마일의 여정이었다.

솜사탕 같은 하얀 구름에 대비되는 파란색 맑은 하늘과 산수가 어우러진 빼어난 자연 경치 외에도 가는 곳마다 여행안내책자와 브로셔 등을 통해 그 고장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새로이 배우고, 현장답사를 통해 역사의 자취들을 피부로 느끼는 기쁨이 컸다. 필자가 방문한 곳들 중에서 학부모님들이 자녀들과 함께 여행하면 좋을 곳들을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주는 미국 영토에서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한 메인 주의 루벡이라는 마을에 대해 새로 배운 내용들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뉴욕에서 95번 고속도로을 타고 북동쪽으로 약 이틀 동안 700여 마일을 자동차로 달린 끝에 미국에서 가장 동쪽 끝에 있는 메인주 소재 루벡이라는 작은 어촌에 도착했다.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미국에서 해가 제일 먼저 뜬다는 웨스트 쿼디헤드 등대 앞에서 새벽 5시35분에 해돋이를 보았다. 이곳은 한때 세계에서 제일가는 정어리 통조림 공장이 있었으나 이제는 인심 좋은 조용한 어촌으로 아름다운 바다경치를 보며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여름피서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온갖 종류의 조류가 서식하며, 그림엽서에 자주 등장하는 등대가 24시간 오가는 배들을 위해 빛을 비춰준다.

인구가 1650명인 이곳은 조용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루벡의 역사에 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파사마쿼디 인디안들이 이곳에 처음 거주하였었다가 그 후 프랑스에서 온 아카디언들(1600년대에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캐나다의 북동부 해안에 이주하였던 프랑스인들의 후예를 지칭)이 1700년대 초에 이곳 해안에 처음으로 도착하였으나 약 50년 후에 영국인들에 의해 추방당하였다고 한다.
1776년에 루벡 북쪽과 무스 섬에 다시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여 1798년에 인구 244명의 이스트 포트라는 마을이 생겼는데 이 마을 주민들의 대부분은 미국 북동부에서 온 미 독립전쟁의 미국군 소속 병사들 그리고 캐나다의 노바 스코샤에서 온 미국군의 지지자들이었다.

이들 최초의 거주자들은 나무를 잘라 집을 짓고, 땅을 개척하여 농작물을 경작하고, 가축들을 기르며, 생선과 어패류들을 채취하였다. 그들은 또 방앗간과 벽돌 만드는 공장들을 만들었다. 1812년 전쟁이전에 발효된 영국 상품 수입금지법으로 루벡에서 지척에 있는 캐나다영 캄포벨로섬(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여름별장이 있으며, 현재는 그의 박물관이 있음)에서 영국과의 불법무역으로 수지를 맞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스트포트의 주민들과 이해관계가 달라진 북부 루벡의 주민들은 그 당시 메인 주가 속해 있었던 매사추세츠 주지사에게 청원하여 1811년 인구 584의 마을로 인가를 받게 되었다.1814년에 이스트포트가 영국군에 의해 점령당하자 이스트포트의 몇몇 상인들이 루벡으로 도피하였는데 지척에 있는 캄포벨로섬의 부두와 창고에 영국산 상품들과 서인도제도의 산물들이 가득 채워져 있어 루벡에서 이들 제품을 밀수입하기는 아주 쉬웠다. 그래서 이스트포트의 상인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부두와 상가를 짓고 캄포벨로에서 상품들을 밀수하여 그 돈으로 밀가루, 쇠고기, 돼지고기, 들통들을 살 수 있었다.

영국과 미국간의 국경분쟁은 1818년에 해결되었으며 그 이후부터 현재의 캐나다와 미국간의 국제 국경 즉 캄포벨로와 루벡 간의 국경이 결정지어졌다. 1820년부터는 밀수입이 사라지고 훈제 청어 공장들이 생기면서 조선 산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1804년에 120톤짜리 배가 루벡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후 140개가 넘는 상선들이 루벡에서 만들어졌다. 이 상선들은 청어, 소금 및 삭힌 생선, 짚단, 감자 및 목재들을 보스턴, 뉴욕과 필라델피아로 실어 날랐으며 돌아오는 길에 석탄, 밀가루, 과일 및 향료, 당밀, 설탕, 럼주와 기타 상품들을 싣고 왔다.

1828년에는 서부 루벡에서 납과 구리광산이 개발되어 약 50년간 채굴이 계속 되었다. 1840년에는 이곳에 운하와 댐이 건설되었고 그 후 석고가 생산되었다. 루벡으로 오고가는 선박들의 원활한 교통을 위하여 웨스트 쿼디헤드에 미국 해안경비대가 초소를 세웠으며, 루벡, 이스트 포트, 루벡 북부, 웰시풀 등을 오가는 페리가 승객들을 실어 날랐다. 1880년에는 정어리 공장이 생겨 1900년에 루벡의 인구가 3005명으로 증가하였다. 조선소, 운송업, 훈제 청어 및 정어리 공장들로 루벡은 번창하였다. 그러나 1880년대에 증기력이 도입되면서 돛단배를 이용한 산업은 하향길에 이르렀다.
현재 루벡의 주민들은 조개채취, 생선과 랍스터, 스캘롭 잡이, 숭어와 연어 양식, 그리고 블루베리 채집 등에 종사하고 있다. 이제 루벡의 산업은 바다에서 잡는 어패물, 산과 들에서 채집하는 식물들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불과 200년 전에 상선과 여객선들로 붐볐을 루벡항구가 이제는 미국의 가장 동쪽 끝에 있는 조용한 어촌으로 되돌아 온 것을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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