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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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의 비극

2007-08-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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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비극을 상징하는 ‘아프간 걸’이라는 잡지 표지의 얼굴을 많은 사람이 기억할 것이다. 1985년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가 찍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 표지에 실렸던 이 사진은 최고 100선집의 표지로 선정되었다. 아프간 걸 사진의 주인공인 12살인 ‘샤르밧 굴라’라는 이름의 소녀는 신비스러운 얼굴의 이미지로 서방세계에 충격을 줬다.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절망의 텅 빈 듯한 표정과 끈질긴 생존의 의지가 함께 응고된 듯한 초록빛의 눈동자를 지닌 얼굴이다. 꿰뚫는 듯한 그녀의 눈빛은 금속을 용접할 때 튀기는 파란 불꽃같이 강렬하다. 그녀의 동공에 비치는 충혈된 붉은 실낱같은 모세혈관은 분노로 금시 터질 것 같다.
1980년도 초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에 헬리콥터 지상공격으로 한 순간에 부모를 잃고 잿더미가 된 고향마을을 떠나 험난한 산악지대의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난민캠프에서 살고 있는 동안 우연히 미국인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 카메라에 잡힌 소녀의 얼굴이다. 그러나 정작 그 소녀는 17년 동안 자신이 세계 미디어에서 얼마나 유명해졌는지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살아온 비 문명지대는 지구상에서 가장 멀고도 먼 곳이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탈레반 정부가 무너진 후인 2002년 봄이었다. 어느 TV에서 상영하는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이 나의 시선을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의 사진작가인 스티브 맥커리가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를 찾아가 자신이 찍은 잡지 표지의 아프간 걸을 다시 찾아내는 극적인 이야기다. 사진작가의 집요한 탐색전으로 17년이라는 긴 세월의 천신만고 끝에 그녀를 다시 찾는데 성공한다. 고도의 스캐닝 기술로 1985년에 찍은 표지 사진과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확증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한 해후였다.
그 유명한 아프간 걸은 사진작가의 사진예술의 극치의 타오르는 모닥불을 피운 작품이다. 문명세계에서도 그녀의 얼굴만을 알 뿐 그녀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17년 만에 소녀를 다시 찾은 사진작가는 두 번째 그녀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세계인들의 시선을 다시 사로잡았다.
30살이 된 그녀는 결혼하여 세 딸의 어머니로 난민캠프를 떠나 아프가니스탄 고향마을로 돌아와 살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는 낙후된 아프간 여인들의 교육재단(Afgan Girls Fund)을 설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교육재단을 운영하는 기부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카불에 도서실과 인터넷 등이 설치된 여자 공립학교에는 젊은 아프간 여자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그녀의 강한 눈빛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창출하여 아프간 여인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세계인들의 집중적인 관심과 지원을 끌어낸 것이다.
아프간 걸은 전광과 같은 광채를 발하는 눈빛으로 폭격으로 팔다리가 잘려나간 토막난 시체들이 뒹구는 전쟁의 극한의 삶을 호소하였다. 아프간 걸의 강한 눈빛은 깨진 유리조각이 가슴에 와 박히는 것 같다. 한번 이 사진을 본 사람은 그 눈빛을 지울 수가 없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얼굴의 노출이 금지된 무슬림 여인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얼굴이 되었지만 다시 아프간 걸은 무슬림 전통 삶의 베일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러나 여성 교육 프로그램은 온 몸을 뒤덮는 부르카라는 무슬림 전통 옷차림의 아프간 여인들의 미래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아프간 여인들에게도 개방이라는 거친 모래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박민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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