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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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업/ 세살배기 신동 박 준

2007-08-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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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에서 들은 스패니시 단어 혼자서 ‘줄줄’

준이는 조지워싱턴 다리 건너는 것을 좋아해요. 예전에 필라델피아 인근에 몇 번 데리고 간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조지워싱턴 다리만 건너면 어디 멀리 여행가는 줄 알거든요.

3세밖에 안되었지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의젓한 박준군. 필립이라는 이름이 예뻐서 아빠랑 같은 이름을 지닌 준이의 미국명은 필립 박 주니어.
“콩, 브로콜리, 당근을 좋아해요.” 채소를 잘 먹는 준이는 월남쌀국수와 치킨도 좋아한다. 일주일에 4번 정도 꼭 월남쌀국수를 먹으며 KFC를 포함해 계동치킨, 교촌치킨 등 뉴욕시 대부분의 치킨 맛은 이미 파악한 상태.

다른 아이들과 달리 젖을 뗄 적에도 칭얼거리지 않았다. 엄마 장은희(36)씨는 왜 젖을 떼어야 하는지 차근차근히 설명해 줬더니 제 말 뜻을 이해했는지 그 다음부터 젖을 물지 않더라구요. 기저귀도 쉽게 떼었어요. 준이에게 화장실 사용법을 알려주고 편한 대로 하라고 했더니 어느 날부터 좌변기를 이용하더라고요. 엄마랑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 TV 만화를 보다가 노래책을 펼쳐 노래를 부르고 그러다 지루하면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혼자서도 잘 논다. 엄마에게 의지하지 않고 본인이 스스로 리모콘으
로 채널을 선정한다.


즐겨보는 만화 프로그램은 디즈니 픽사의 ‘자동차(Cars)’이며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자동차 장난감들을 하나하나씩 모아 지금은 23종 모두를 갖고 있다. 피아노를 전공한 엄마를 닮아 절대음감이 있어 TV나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노래가 나오면 금새 따라 부른다. 물론 가사는 작사한다. 심심하면 차에서 틀어주는 노래 CD와 어린이용 인터넷사이트에 들어가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한다.정리정돈을 잘해 자기 물건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 엄마가 피아노 레슨을 하는 날 외할머니 댁에 보내지는 준이는 집에 갈 시간이 되면 방바닥에 풀어놓은 장난감을 죄다 모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가방에 챙겨 넣는다. 심지어 먹다 남은 과자 봉지까지도 챙겨 가끔씩 외할머니를 섭섭하게 하기도 한다고.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준이를 유치원에 남겨두기가 안쓰러워 장씨는 집에서 교육한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엄마랑 떨어지게 되는 걸요. 아직 어리니까 좀더 큰 다음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어요. 대신 일주일에 두번 든든한교회에서 운영하는 ‘엄마랑 아기랑’ 프로그에 참석해서 저랑 같이 율동하고 노래부르고 만들기를 합니다.

엄마가 직접 다독거리며 교육해서인지 또래 아이들처럼 유치원이나 태권도, 피아노, 미술 학원을 두루 다니며 부산하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아는 것은 배나 많다. 한 번은 유치원 입학 첫 날 집에 돌아와서 하는 말이 ‘배울 게 없다’며 안가겠다는 것이었다. 알파벳을 포함해 기본적인 영단어는 다 알고 숫자는 십조까지 읽을 수 있다. 또 기억력이 좋아서 한 번 가르쳐주면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 리모콘으로 무심코 틀게 된 스패니시 만화 채널을 보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스패니쉬 단어들을 혼자서 줄줄 외우고 난 후 엄마한테 빨강색은 ‘로호’, 노랑색은 ‘아마리오’, 아래쪽은 ‘아바호’라고 알려주기까지 한다.

“가끔씩 아이가 영어도 아닌 스패니쉬를 혼자서 아무렇게나 외우는 것은 아닌가 싶어 확인해 보면 대개 틀리지 않고 정확히 알고 있더라구요. 그러 때면 신기해요.”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말을 또래 아이들에 비해 잘 한다. 어른들에게 인사할 때에는 허리를 90도로 굽혀 ‘안녕하세요’하고, 헤어질 때에는 ‘조심히 가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아이답지 않아 웃음이 절로 난다.미국에서 태어난 준이의 한국어 교육에 대해 장씨는 “이민 가정 중에는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에게 한국말을 일절 가르치지 않고 영어만 사용하게 하는데 저는 여기에 반대해요. 한국인이 한국말을 해야지 영어만 잘 해서 되나요. 영어는 때가 되면 학교 가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기에 집에서는 한국어로 대화하도록 가르쳐요.”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다 못해 지나쳐 한창 밖에서 놀아야 할 나이의 아이들을 서너 곳의 학원에다 묶어두는 요즘 엄마 답지않게 장씨는 되도록이면 아이에게 학업에 대한 중압감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준이가 커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
록 밀어 줄 생각이에요. 공부는 때가 되면 자연히 하게 되니까요. 제가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본인이 배우고 싶어하지 않는 이상 아이에게 피아노를 배우도록 강요할 생각도 없어요. 명랑하고 활발한 준이가 지금처럼 앞으로도 밝고 건강하게 자라줬으면 좋겠어요.”박준군은 필립 박(43), 장은희(36)씨의 외아들이다.

<정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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