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왜 사냐 건 웃지요

2007-08-13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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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엄쉬엄 살아가는 인생의 여유

대형사고, 전사자가 매일 속출하는 이라크전 뉴스를 접하며 저는 항상 모든 일이 빠르게만 지나가고 그렇다고 더욱 잘 되거나 행복한 것만은 아닌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만약 지금 무슨 일이 생겨 제가 죽는다면 저는 무엇을 이 세상에 남기고 가는 사람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바쁜 세상에 바쁘게 살면서 제가 늘 어느 강의실에 들어가더라도 항상 당부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머리 잘 돌아갈 때 생명을 바쳐 공부하고, 아직 돈 생각하고 집 살 것 따지기 전이니 진실하고 정열적인 사랑도 해 보고, 그리고 아무 걱정 없이 아주 멋지게 실컷 놀면서 화장실을 나누어 쓸 수 있을 만한 진정한 친구를 만드는 일이야. 부부는 헤어져도 친구는 영원한 것이고 부모님께나 애인에게 못하는 상담도 친구에게는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러나 이 세 가지가 다 결국은 훌륭한 자식이 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해. 결국 우리는 대를 잇는 그리고 그 대를 이어가는 동물로서의 본분을 다 하는 것이 도리이니까 말이야”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를 나무라기 전에 저는 제가 한 가지 잘 가르쳤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 한 편이 있어 저를 선생으로서 떳떳하게 죽을 수 있겠다고 여겨봅니다. 바로 그 시 한편은 ‘남(南)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김상용 시인의 시입니다.
남(南)으로 창을 내겠소/밭이 한참갈이/괭이로 파고/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 건/웃지요.

하도 쉽게 쓰여진 시라 영어로도 쉽게 이해가 되고 한글로도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일제의 강점기 시대에 나라 잃은 억울함과 가난의 서글픔을 뛰어 넘고 입가에 미소를 띠고 새 소리를 음악 삼아 호미로 강냉이 밭을 매는 시인의 안분지족의 삶은 신선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싸우지 않고도 이기고 울지 않고도 한이 풀어지는 삶이 바쁘지 않게 살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왜 사냐고 묻는 질문에 웃음으로 대답하는 그 모습은 요즈음 이 삭막한 물질문명의 시대에 이유를 누누이 설명하지 않고도 따지지 않고도 이심전심으로 이해를 시키는 달관의 세계에 도달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틀림없이 그 분은 시계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틀림없이 그 분은 돈 장부와 가계부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대자연 속에서 죽음조차도 구름조차도 그 분을 범접할 수 없는 대인의 자족의 삶을 엿봅니다.
저는 이번 여름 학기에 한국 인류학을 강의하면서 한국 사람의 풍유를 가르치면서 왜 한국의 기와지붕이 직선이 아니고 둥근가를 그리고 버선이 왜 아름다운가를 저고리의 깃이 소매의 도련이 왜 둥글게 만들어졌는지를 가르치면서 다시 한국인의 지혜와 그 여유에 반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죽어라고 공부하고 죽어라고 연애하고 죽어라고 놀면서 친국 사귀기를 물론 강조하지만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 나타난 안분지족과 여유의 아름다움을 더욱 더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죽음을 생각하면서 기껏 제 인생이 시 한 편을 가르친 것을 만족하게 생각하면서 죽어도 좋다고 자족하는 것이 좀 시건방지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이 시를 읽으면서 저도 쉬엄쉬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그리고 이 생명이 중요한 만큼 평소에 가족과 친구와 학생들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하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죽음은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정정선
<시인, UC Santa Barbara 한국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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