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엄마, 아빠의 잔소리가 오히려 그리워지던걸요.”
뉴욕 그레잇넥 사우스 고교를 다니다 지금은 토론토에서 혼자 6개월째 유학생활 중인 여기헌(16·미국명 조수아·돈힐 세컨더리 스쿨 11학년 진급 예정)군은 요즘 왠지 또래보다 조금은 더 빨리 철이 들고 있는 느낌이다.
외동아들로 아빠(여익환)와 엄마(이진숙)의 품속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던 그가 토론토 유학을 결심한 것은 자신이 정한 장래 목표 달성의 꿈을 이루는데 일찌감치 자립심을 기르는 것도 필요한 과정의 하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약학 공부를 시작한 엄마의 뉴욕 유학으로 2년 전 캐나다를 떠나기 전까지 토론토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가족이 이민생활을 했던 곳이어서 그리 낯선 곳은 아니지만 혼자서 생활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요즘 절절이 느끼고 있다. 공부만 하면 되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혼자서 밥도 해야 하고 빨래와 청소는 물론, 공과금 납부와 은행 업무까지 살림살이를 모두 도맡다 보니 한편으로는 책임감도 생기고 또래보다 세상
살이를 한발 앞서 경험한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뿌듯함도 있다. 하지만 이래라저래라 잔소리 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시간 관리에서부터 모든 일상생활들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자기 통제력을 기르는 일이 가장 힘들었단다.
맘이 울적하거나 힘들 때면 베이스기타를 치면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3년 전 독학으로 익힌 베이스기타가 마냥 재미나 요즘은 한창 그 매력에 푹 빠져 지낸다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익힌 색소폰은 학교 밴드와 협연은 물론, 재즈와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 무대에서 활약할 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연주 실력을 지녔지만 베이스기타가 훨씬 매력적이란다. 피아노와 각종 타악기 및 전자기타까지 못 다루는 악기가 없을 만큼 재주꾼인데다 아이스하키와 풋볼, 농구, 축구 등 못하는 운동이 없는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해 여학생들의 눈길도 사로잡는다.
학교 축구대표선수로 활약하는 그에게 부진한 한국 축구의 문제점 분석을 의뢰했더니 “한국의 축구선수들은 초반에는 잘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뒷심이 부족하다”는 막힘없는 대답이 나왔다. 가장 좋아하는 운동선수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꼽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신이 졸업한 토론토의 모교 중학교에서 후배들에게 농구도 가르치고 경기심판도 보고 있으며 학교 체육수업에는 코치로도 활동하고 있다.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민가 생활하다 미국생활 2년 만에 다시 캐나다로 향한 그에게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했을 때 그는 “자신은 ‘코리안’도 ‘코리안 아메리칸’도 아닌 아직은 ‘코리안-캐나디안‘이라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행히도 불과 몇 주 전 알게 된 ‘싸이월드’를 통해 먼 옛날(?) 학동 초등학교 동창생들까지 찾게 돼 또 다른 재미를 느끼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유학생활을 통해 그간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게 자식교육에 힘썼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감사하는 마음도 새록새록 생겨나고 있다. 한때 직접 웹사이트를 구축해 컴퓨터로 주문 판매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경영한 경력을 갖고 있는 그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장래 세계적인 기업 경영가의 꿈을 차곡차곡 키워나가고 있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