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 한마디에 천냥빚

2007-07-21 (토)
크게 작게
얼마 전 오리건의 외딴 해변으로 골프여행을 다녀왔다. 독립기념일을 맞아 여행갈 꿈에 마음이 둥둥 뜬 몇 커플이 의기투합하여 떠난 여행이었다.
LA에서 아침에 떠나 비행기를 두 번씩 갈아타고, 리무진을 타고 두 시간 반을 달려서 가니 해가 붉게 물들 무렵 도착했다.
그곳은 바닷가 끝 아주 조그만 촌락이었는데, 골프 리조트가 생기면서 비즈니스가 활성화돼 상가에 생기가 일고 있는 곳이었다.
골프장은 먼 길을 달려온 보람이 있을 만큼 아름다웠다. 자연의 자태를 살리느라 나무와 모래 그리고 야생화들을 그대로 보존한 채 설계되었다. 18홀짜리 코스가 세 곳이 있는데 각각 그 개성이 달라 미국 골프장 랭킹 1위와 5위를 이 곳이 차지했다고 한다. 그만큼 섬세한 디자인으로 조각하듯이 길을 이어 가고, 때로는 모래를 그대로 살려 모래 위에 세워진 골프의 궁전 같았다.
숙소 역시 나무랄 데가 없고 호텔의 음식도 수준급이었다. 숲속의 방갈로들은 띄엄띄엄 감각 있고 운치 있게 지어졌고, 실내가구 또한 훌륭했다. 이 골프장의 단 하나 흠이라면 반드시 캐디를 동반하고 걸어서 골프를 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루는 리조트 바깥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 호텔측의 소개를 받아 해변 상가에 있는 한 식당을 찾았다. 식당의 규모는 작았지만 손님들은 많았다. 우리 일행은 예약된 자리에 길게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데, 언뜻 보아도 한국 사람이 분명한 여성이 다가와 씩씩하게 인사를 하며 자기가 그 식당 주인이라고 소개를 했다.
그런 외딴 마을에서 한인을 만난 것이 너무 반가워 우리는 오랜 친구라도 만난 듯 즐겁게 인사를 나누었다. 한인이라고는 살지 않을 것 같은, 외롭기 그지없어 보이는 그 촌에서 어떻게 자리 잡을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식당을 그만큼 키운 게 대견하기도 해서 우리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모두 “이 식당을 찾기를 잘 했다”고 기뻐하며 마침 우리 일행을 인솔한 여행사 직원이 있어 “서로 알고 지내면 사업상 도움이 되겠다”고 소개를 했다.
그 주인이 대뜸 하는 말 - “저기 저 줄서 있는 사람들 좀 보세요”
그녀의 얼굴 표정은 얼마든지 손님은 있다는 자신감에 넘쳤다. 그러니 자기는 여행사측과 별로 알고 지낼 필요가 없다는 말로 들렸다.
우리는 순간 할 말을 잃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갑자기 그 여성에게 연민의 정까지 느끼며 나는 생각해 보았다. “감사합니다” 혹은 “앞으로도 계속 와 주세요” 하였으면 얼마나 의젓해 보이고 자랑스럽기까지 했을까.
우리 한인들은 대부분 부지런하여 열심히 일하고, 머리까지 좋아서 어느 분야에서든 두각을 나타낸다. 그런데 거기에 겸손이라는 미덕까지 갖춰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 속에 꿈틀거렸다.
즐거웠던 기억에 흠집만 남긴 그 여성을 뒤로 하고 씁쓸한 기분으로 식당을 나서면서 나는 생각했다 -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데…

에바 오 / LA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