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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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여행의 천국

2007-06-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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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여행을 좋아하다보니 시간만 나면 가까운 근교에라도 다녀와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다 보니 점차 즉흥적인 여행습관을 익히고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생활현장에서 부대끼면서 지치고 피곤한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데 여행만한 것이 없다.
미국의 고속도로는 여행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편이시설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래서 큼직한 지도 한 장과 국립공원 연중 입장권, 그릇 닦기 편하도록 기름기 없는 음식, 개스레인지, 세면도구, 수건, 잠옷을 겸하는 간단한 복장에다 여벌 한벌이면 언제라도 준비완료이다.
일단 계획이 잡히면 가능한 이른 새벽에 출발하고 음악을 듣거나 대화를 통해 흥겨운 마음상태를 유지하고, 졸릴 때는 차를 세우고 잠간씩 수면을 취하면 드라이브를 즐기면서 오랜 시간 운전해 갈 수 있다.
휴게소만 잘 활용해도 유익한데 어떤 곳은 대궐 같은 화장실에 커피, 음료수, 스낵 등을 파는 자판기, 지붕 얹은 야외식탁까지 갖추고 24시간 개방하고 있어 언제라도 이곳에서 휴식을 취한 후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날 수 있다. 한 밤중에 눈을 떠보면 언제 들어왔는지 주위에 많은 차량들이 모여 있고, 심심찮게 분위기에 맞지 않아 보이는 고급 승용차도 사이에 끼여 밤을 함께 한다.
사진기는 가져가지 않는 것이 매끈한 여행의 흐름을 방해받지 않는다. 원시캠프장(primitive campsite)을 이용하면 물도 전기도 없지만 순수 자연 속에서 누리는 바는 더 크다. 무공해 청정 하늘이 펼쳐내는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꽃놀이 향연에 넋을 잃고 아이 때 부르던 동요를 떠 올리며 막무가내 그 시절로 달려가게 된다. 모닥불 피워놓고 감자, 고구마 등을 구워 먹는 재미는 또한 어떠랴.
그랜드 캐년 북쪽 림(RIM) 원시캠프장에서 밤을 새울 때 내려다보기에 발이 저릴 정도로 가파른 콜로라도강 계곡과 건너편 남쪽 림을 마주하면서, 해발 7천여 피트 절벽아래서부터 들려오는 웅웅거림, 계곡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환상에 태고의 울부짖음 같은 오싹함과 전율이 있어 좋았다.
여행의 또 른 기쁨은 같이 자연을 찾는 사람들 속에서 한없는 평화를 공유하는데 있다. 캐나다 국경에 위치한 글레이시어 호수 환상의 캠프장, 찬연한 호수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자그마한 체력의 한 백인소녀가 자신의 키 두배나 됨직한 카누를 매단 허름한 승용차를 몰고 와 텐트를 치고 새들도 반겨 맞는 나무그늘아래 등을 의지한 채 유유히 책을 읽는 모습에서 지상의 평화를 보았다.
한 백발의 노부부가 식탁보를 같이 펴고 샌드위치 한 조각을 꺼내 손을 마주잡고 감사한 뒤 빵을 나누고 식탁 주변을 깨끗이 정리한 후 자리를 뜨는 모습에서는 ‘인생은 아름다워라’를 보았다.
자동차 여행이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가치는 무한해서 비견할 데가 없다.

임학준
LA카운티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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