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육 칼럼- 가는 길이 멀다고 느껴질 때

2007-06-25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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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아주 잘 하는 사람이 있었다. 쉬지 않고 몇 시간씩 계속해서 수영을 해도 지치지 않을 만큼 강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더운 여름날 바다에서 유람선을 타다 배가 전복되어 바다에 빠지게 되었다. 갈고 닦은 실력으로 육지를 향해 열심히 헤엄을 쳐갔지만 30분도 못되어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다. 육지가 너무 멀게 보여 낙담한 나머지 더 이상 헤엄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지점은 육지로부터 한 시간만 헤엄치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낙담한 것이 그에게서 살려는 용기를 빼앗아가 버렸다.
살다보면 가는 길이 멀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꼭 그 길을 가야 하는지를 묻게 되고 심지어 그 길이 내 길인지조차 확실치 않을 때가 있다. 이때껏 열심히 걸어왔기 때문에 가기는 계속 가지만 시인 프로스트가 노래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마음 한구석에서 떠나질 않아 자꾸 고개가 그쪽으로 돌려진다. 얼마나 멀리 떠나 왔는지 여태껏 온 길을 돌아보기도 한다. 가는 길이 멀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낙심한다.
이런 생각에서 부모들은 자식들이 좀 더 확실한 길을 가기를 바란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탄하게 보이는 길을 선택하길 원한다. 그래야만 마음이 좀 놓일 것 같다. 하지만 자식들 마음이 부모 같지 않다. 많은 아이들이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지 인생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분명하지 않다. 과거에는 없었던 성격 테스트니 적성검사니 하는 것들도 그런 아이들에게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 무언가가 아이들의 몸에서 나사들을 풀어놓은 것처럼 요즘아이들은 많이 느슨해 졌다. 손끝을 몇 번만 움직이면 인터넷을 통해 별 노력 없이 쉽게 엄청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생각지도 못한 세상이 열린지도 오래다. 너무도 빠른 컴퓨터의 발전 속도에 시간이 걸려 얻어지는 것은 마치 이젠 한물간 먼지 쌓인 고물로 비교되고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은 대박의 꿈을 꾸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 뜻조차 이해시키기 힘들다. 힘닿을 때까지 일하려는 부모 세대와는 달리 요즘 아이들은 빨리 은퇴해서 인생을 즐길 계획에 부푼다. 엄마 아빠는 왜 인생을 그리도 어렵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오히려 반박한다. 말문이 막힌다.
세상을 살다보면 가는 길이 멀고 험하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분명히 내리막길도 있다고 했는데 내가 가는 길은 어찌 끝없이 오르막길밖에 없는가. 그나마 앉아 땀 닦고 쉴 만한 나무그늘도 별로 없다. 그래서 지금 너무 피곤하다. 그래도 살기 위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이 길을 가다 보면 무지개를 만날 것 같아 걷기 시작했건만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은 피곤한 현실뿐이다. 보이지도 않는 이 길 끝에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이 있다던데 젊은 시절의 꿈과 포부가 세월과 함께 지나가 이제 남은 것은 백미러로 보이는 깊게 파인 이마의 주름살뿐이다.
우리 이민 1세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그 자체가 한편의 대하드라마며 위인전기다. 모두가 지나온 고생을 이루 말로 다하자면 책을 쓰고도 남는다. 더러는 성공했고 더러는 돈도 모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건강을 잃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너무 서럽고 외로워 목 놓아 울기도 했다. 가는 길이 멀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한숨을 쉰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멀 때 우리들의 마음은 노곤하다. 하지만 낙담하지 말자. 지금 가는 길이 힘들지만 포기해선 안 된다.
우리들 각자의 위인전기를 해피엔딩으로 끝내기 위해서 우리 자신과 했던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다만 지금 지친 우리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용기를 낼 수 있게 갈채를 보내야 한다. 우리 이민 1세대에게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낸다.
<213-381-3949; www.MyIvyDream.com>

홍영권
(USC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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