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복장도 매너다

2007-06-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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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서는 어느 골프장을 가도 한인들을 많이 접할 수가 있다. 그 숫자가 하도 많아서 한인들 없으면 골프장 운영에 지장이 생긴다고 할 정도이다. 나도 그에 한 몫 하는 골퍼이다.
그런데 자주 골프장에 가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한인들이 복장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미국 사람들, 특히 백인들은 흰 피부가 돋보이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반바지에 허름한 T-셔츠만 걸쳐도 그리 초라해 보이질 않는다. 반면 한인들이 그런 차림이면 상당히 초라해 보일 수가 있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한참 재미있게 골프를 치고 있을 때였다. 저쪽 반대편 홀에서 티샷을 하는 남자 그룹이 보였다. 멀리서 보아도 우리 그룹의 남편들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내 눈이 나빠서인지 그 남자들의 모습이 온통 초라해 보였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니 그 중에서도 제일 후줄근한 내 남편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아침 남편보다 먼저 골프장으로 향하느라 남편의 복장을 체크하지 못한 결과였다.
남편은 그 전날 빨아놓고 다림질도 하지 않은 T-셔츠를 그대로 입고 나온 것이었다. 내가 미처 남편 옷을 챙겨 놓지 못하고 나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남편은 복장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아무 것이나 눈에 띄면 입는 편이다. 그래서 옷에 관한 한 내가 늘 잔소리를 하는 편이다.
우리끼리 사는 한국이라면 모를까 다민족이 사는 미국에서는 신경을 써서 옷을 입어도 우리 동양인은 자칫 왜소해 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LA에 사는 친지 중 매일 아침 조깅을 하는 분이 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요즈음은 많이 습관화 되어 맑은 기분으로 출근을 한단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아주 기분을 언짢게 하는 일이 있다고 했다.
한인 아주머니들이 조깅을 하는데 그 차림이 너무 눈에 띄어 적잖게 신경이 쓰인다는 것이었다. 옛날 할머니들이 입던 고쟁이 같은 바지에 집에서 입던 추레한 차림으로 뛰다가 때때로 멈춰서 남의 집 담의 꽃까지 꺾어가는 모습을 보자니 같은 한인으로서 얼굴이 뜨거워지더라고 했다.
미국은 아무렇게나 하고 다녀도 뭐라는 사람이 없어 좋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 미국이라는 생각이다. 겉으로는 아무 말 안하지만 속으로는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미국사람들이다.
각 나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미국 땅을 그렇게 만만하게만 보아서는 안 되겠기에 나는 늘 신경을 쓰며 조심을 한다. 골프를 치거나 조깅을 하거나 공공장소에서는 갖추어야 할 예의가 있고 복장도 그 중 하나라고 본다.
이 나라는 가장 신사적이며 자유가 넘치는 나라이지만 도의적 차원이든 법적 차원이든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나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인들이 미국사회에서 산뜻하고 예의바른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공공장소에서 행동이나 복장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한다.

에바 오 /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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