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비융자 갚기도 빠듯
독립.결혼계획 막막
올해 대학을 졸업하는 한인 정세연씨는 졸업과 동시에 직장에 취직해 멋진 싱글생활로 독립하겠다던 계획은 이미 포기했다. 그렇다고 졸업 후 부모 집으로 들어가 얹혀사는 이른바 ‘둥지족’의 꿈도 버린 지 오래다.
정씨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대학시절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룸메이트와의 공동생활. 그럭저럭 취직에 성공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대졸자 초봉임금으로 혼자서 독립생활을 감당할 자신이 도저히 없었기 때문이다.
주거문제만 하더라도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있는 괜찮은 아파트를 임대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 결국 대학생활을 함께 한 룸메이트 3명과 더불어 임대료가 비싼 캠퍼스 인근을 떠나 외곽지역으로 옮기기로 했다.
가는 곳마다 대졸자 대상 자동차 특별 할인 혜택 광고가 넘쳐나지만 정씨나 룸메이트들은 그저 그림의 떡 보듯 지나칠 수밖에 없다. 개솔린 가격마저 매일 기록 갱신의 연속이어서 자동차 구입은 상상도 못하고 있다. 대신 새로 옮기는 아파트는 반드시 대중교통 연결이 편리한 곳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사회인이 되고서도 사생활을 보장받지 못한 채 2베드룸 아파트에서 4명이 부딪히며 생활해야 한다는 현실이 한편으로 서글프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둥지족 신세도 할 수 없는 처지다. 사정은 정씨의 룸메이트들도 마찬가지. 한동안 천정부지로 치솟은 대학 학비로 개인적으로도 상당한 학비융자 부채를 안고 대학문을 나섰지만 그보다 더 큰 부채부담은 정작 부모가 지고 있어 감히 손을 벌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부모 역시 둥지족을 자처하는 자녀를 마냥 반갑게 맞아들이기도 못내 부담스럽다.
지난 수년간 주택가격 상승으로 상당한 에퀴티가 쌓이긴 했지만 동생까지 자녀 2명의 대학 등록금을 책임져야 했던 정씨 부모는 이미 에퀴티의 상당 부분을 학비로 써버렸다. 미국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지만 주택 모기지와 에퀴티 융자상환에 그간 불어난 각종 생활비까지 주머니가 쪼그라들기만 하는 부모로서는 더부살이를 원하는 자녀를 물리치기도, 받아들이기도 난감하다고.
최근 갈수록 명문대학을 중심으로 중·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전액 학비 지원 정책을 발표하는 학교가 늘고 있지만 올해 대졸자들은 이 같은 프로그램 혜택 대상에 포함되기에는 늦은 세대. 게다가 하이텍 세대로 대표되는 올해 대졸자들은 선후배와 인간적 교류보다는 마이스페이스, 유튜브, 블로그 등을 통한 인간관계 형성에 치중해 정신적으로도 상당한 외로움을 겪고 있다.
“대학만 졸업하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졸업을 앞두고 보니 인생이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어 막막함뿐”이라며 “결혼이나 자식을 낳아 가정을 꾸미는 일은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정씨의 고백은 올해 사회로 첫발을 내딛으며 기로에 서 있는 대다수 대졸자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A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