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동포사회 저력 과시한 한인회장 경선

2007-06-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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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실시된 시카고 한인회장 선거에서 정종하 후보가 서정일 후보를 누르고 제28대 회장으로 당선 되었다. 14년 만에 처음으로 실시된 이번 경선은 시카고 동포사회의 단결과 저력을 과시한 한마당 잔치였다.
선거를 앞두고 필자는 이 난을 통해 ‘한인회장 선거 축제의 장이 되자’고 주장했다. 우리의 바람대로 선거는 축제의 장이 되었고, 화합의 한 표를 행사 하고 나오는 동포들의 가슴은 오랜만에 훈훈하고 즐거웠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감정을 표시했다.
나는 오후4시에 투표소에 갔다. 투표장인 노스이스턴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두 가지를 강렬하게 느꼈다. 하나는, 질서정연함과 친절함이었다. 무더위에 군데군데 서서 파킹장을 안내하는 도우미에서부터 투표 진행 요원에 이르기까지 자원봉사자들의 열심과 일사불란이 인상적 이었다. 두 번째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러 나온데 대해 깜짝 놀랐다. 14년 전 3,000명 미만(2,800명)이 나왔고, 이번에는 10명 중 7명은 선거가 있는 줄도 몰랐다는 말도 들리고 해서, 홍보가 부족했다면 4,000~5,000명 정도만 나와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시간 당, 400~500명씩 행렬이 몰려들어 무려 6,321명을 기록했다. 실로 ‘피플스 파워’를 보여주었다. 만약 서버브에도 1~2군데 투표소를 증설 했다면, 전 미주 한인 이민사상 최대의 선거 인파를 기록 했을 지도 모른다. LA와 뉴욕은 최근 실시된 선거에서 각각 7,300명, 6,100명을 기록했다.
시카고 동포사회의 이와 같은 참여와 열기는 한인회에 대한 관심의 표출이며, 우리들에게 일체감과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이 단결력이 선거 때에만 일시적으로 분출될 일이 아니라, 평소에도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주류사회의 공직 진출에도 큰 기대와 희망을 갖게 한다.
최종 개표 결과는 6,321명이 투표해, 그 중 정종하 후보가 3,524표(55.75%), 서정일 후보 2669표(42.22%)를 각각 획득 했다. 당초 기선을 제압한 서정일 후보의 신승이 예상 되었으나, 정종하 후보의 맹추격으로 박빙의 승부가 점쳐졌었다. 유권자들은 새얼굴에 개혁을 원했다고 분석 된다. 젊은 층의 대거 참여도 정 후보의 승리 요인으로 작용 했다. 그러나 두 후보 모두 선전 했으며, 시작부터 끝가지 멋진 승부를 보였다.
정종하 후보는 당선의 변을 통해 “초심 잃지 않고 하나 되는 변화 가져 오겠다. 두려운 마음으로 동포들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열심히 발로 뛰겠다. 선배 어른들과 1.5세, 2세가 화합된 힘으로 새로운 한인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인회에 10만 달러 기부도 재확인 했다. 정 후보는 지금 선거에 이겼지만, 임기 끝나고 떠날 때 한인회장으로 승리를 해야만 진정한 승자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것이 바로 초심을 지키는 것이다.
낙선은 했으나, 서 후보도 잘 싸웠다. 조승희 사건이 터졌을 때만 해도 ‘28대 한인회장은 서정일’ 이라는 것을 확신했던 것 같다. 그러나 경선에 의한 선거전이 본격화 되면서 일부 기관 단체장과 이름이 잘 알려진 인사들의 서 후보 지지는, 서 후보에게 오히려 짐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준비된 일꾼’으로서 그가 한인사회를 위하여 쌓아 놓은 봉사의 업적과 공로,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얻은 교훈은 귀한 것이며, 그는 이번이 아니더라도 언제고 다시 큰 꿈을 반드시 이루리라고 생각한다. 서정일 후보는 정 당선자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당선을 축하한다고 인사를 하면서 “이번 선거를 계기로 더욱 화합하자.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라고 멋있는 패장의 모습을 보였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듣는 순간, 나는 땡볕에서 아들의 당선을 위해 선거 운동을 하던 팔순의 서 후보 부친과 형님의 얼굴이 스치면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아무튼 이번 선거는 여러가지 면에서 성숙한 선거문화를 선보였다. 무엇보다도 많은 2세들이 커뮤니티의 사랑을 보여 무척 고무적이다.
끝으로,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매사는 누가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번에 철저한 선거 공영제를 실시, 토론회 등을 통해 우리 선거문화를 격상 시키고, 우리 동포사회의 화합의 초석을 마련한 홍순완 선거관리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원 여러분의 노고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투표 마감 시간인 저녁 9시가 임박하자 투표소를 향해 급히 뛰던 유권자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만큼 정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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