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긴장속에 뒤엉킨 현실과 환상

2007-06-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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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은희경이 돌아왔다. 과거 소설들이 가족관계에 골몰했다면 이번 작품은 고독하고 분열적인 현대인의 삶으로 사유의 저변을 넓혔다.
은희경의 신간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의심을 찬양함’ ‘고독의 발견’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등 6개의 중·단편으로 이뤄졌다. 표제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서른 다섯 번째 생일, 가족을 버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어릴 적 아버지와 만나던 이태리 식당에 걸려 있던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을 잊을 수 없다. 그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뚱뚱한 나’를 기억하는 대신 아름다운 그림을 기억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기 전 아름다운 자신을 보여주기로 결심하고 다이어트를 시도한다.
하지만 끝내 주인공은 아버지가 죽은 후에야 달라진 모습으로 빈소를 찾게 된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자신을 부정하는 현실에서 주인공은 아버지를 부정하듯 꾸역꾸역 밀어넣은 밥을 게워낸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가 가족관계에 천작해 있다면, 다른 소설들은 좌표 잃은 현대인의 삶에 주목한다.
이번 소설집의 눈에 띄는 특징은 현실과 환상의 긴장과 뒤엉킴에 있다. 서사를 따라 충실하게 읽다 보면 소설 속에서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소설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독자에게는 이런 요소가 읽기를 방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리한 독자라면 겹겹의 허구 속에서 한 차원 다른 삶의 진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은희경 매니아가 존재하는 지도 모르겠다.

알라딘유에스 대표
www.aladdin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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