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특수교육 알아보기 혼자서도 잘해요

2007-05-21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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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학교를 못가고 말았다.
우리 동네는 학교가 끝난 오후나 학교가 없는 휴일에는 아침부터 하루 종일 온 동네 꼬마들이 골목에 모여 고무줄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비석치기도 하며 뛰어놀고 여기저기 우는 소리며 깔깔대고 웃는 소리가 왁자지껄하게 온 동네를 메우는 활기찬 동네였다. 그런데 눈을 비비고 밖으로 나와 보니 온 동네가 썰렁하고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가? 엄마가 깨우지 않은 것이다.
그냥 피곤하면 학교 가지 말고 푸욱 쉬라는 엄마의 배려라고 생각하기에 좀 이상한 배려 때문에 난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잠을 잤던 것이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아침에 싸움을 하듯이 깨우는 일을 그만두셨다. 엄마가 깨우지 않으신다니 설마 했지만 깨워주시지를 않아서 진짜로 학교를 못간 것이다. 우리를 깨우느라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시던 엄마는 휴전을 선포하시고 영원히 전쟁터를 떠나버리셨다.
아이들과 놀던 텅 빈 골목길을 보니 그리운 교실이 눈앞에 펼쳐진다. 책상을 여닫는 소리. 의자를 직직 끄는 소리. 사각사각 연필심 가는 소리. 교탁을 탁탁 치시며 “조용!”하시는 선생님의 외마디 소리. 수업시작 종과 함께 찾아온 고요함을 가르며 슥슥 탁탁 리듬 있게 칠판에 부딪치는 분필소리. 창밖에서는 하나둘 구령소리에 맞추어 체조를 하는 소리. 어디선가 신명나는 풍금소리에 맞추어 목청을 돋우어 노래하는 소리. 아무도 감히 수업시간 중에 나다닐 수 없는 복도에 신발을 끌며 지나가는 교장 선생님의 헛기침 소리. 그런데 난 오늘 그런 귀에 익고 정겨운 소리와는 사뭇 다른 붕붕대는 자동차 소리, 길에 물을 끼얹는 소리. 빗자루로 땅을 쓰는 소리, 조그만 용달차에 달린 확성기를 통해 나오는 나물 배추 생선을 사라는 목멘 소리들의 생소함이 혼자 떨어져 있는 나에게 두려움을 더해 준다.
난 내가 속한 세상으로 가야함을 깨달았다. 학교가 좋았다. 책과 가방이 좋고 점심시간이 있어 좋았다. 선생님이 있어서 좋았고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좋았다. 떠들다 야단을 맞으면서도 킥킥 웃을 수 있어서 좋았고 엄마나 가족보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친구들이 좋았다. 체육시간이 좋았고 목청을 높일 수 있는 음악시간이 좋았다. 난 그 이후로 일찍 자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고 창문에 절대로 커튼을 치지 않는 방법도 생각해 내었다.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야 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평소에는 창밖에 해가 뜨고 날이 밝으면 스스로 눈이 떠지도록 훈련이 된 것이다.
자녀 교육은 모든 부모들의 관심이고 걱정이다. 수업 내용을 잘 배워 공부를 잘 하고 좋은 학교를 가고 좋은 직업을 얻는 그 순간까지 공부 이외의 모든 책임을 떠맡는 집사의 역할을 자청함으로 관심과 걱정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요한 교육은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모가 강요해서 하는 공부는 오래가지 못한다.
강요했기 때문에 아이가 이 만큼 하는 것이라고 자랑하는 부모들을 가끔 본다. 그렇지 않다. 그 아이는 부모가 강요하지 않았어도 스스로 충분히 공부를 해낼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부만을 강조하기보다는 무엇이든지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고 혼자 해낸 것을 칭찬하는 방법은 자녀는 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과 능력을 갖추게 돕는 최선의 길이다.

김효선 교수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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