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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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업/ 도그우드힐 초등학교 4학년 박승연 양

2007-05-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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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지체로 인해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야 했던 한인 여아가 뉴저지주 아동·가정국(Department of Children and Families)이 주최한 ‘2008 아동·가정국 달력 콘테스트’에서 수상자로 선정돼 따뜻한 감동을 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뉴저지주 오클랜드 시에 위치한 도그우드 힐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박승연(10·미국명 Rebecca Pak) 양. 언어지체로 인해 4살 때까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말 대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림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박 양은 지난 1997년 8월10일 뉴저지주 오클랜드 시에서 공인회계사 박중련 씨와 뉴욕 순복음교회 유아부 교사로 봉사하고 있는 박명숙 씨의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업 및 사회 활동에 두각을 나타내며 한인사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온 언니 오빠와 달리, 언니 오빠와 11살, 9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 박 양은 4살 때까지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사실 1살 때까지는 말은 웬만큼 하는 편이었으나 한국에 1주일 정도 다녀 온 후부터는 말을 전
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아버지 박중련 씨는 “소아과의사가 청각 테스트와 정신감정을 권해서 테스를 받은 뒤 한 의사가 자폐증일 수 있다는 말을 해 가족들이 크게 근심했었다”며 “그러나 여러 테스트를 통해 결국 자폐증이 아닌 언어지체로 판정이 났다”고 말했다.


언어지체로 판정이 난 뒤 박 양은 현실을 인정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 4살 때 학군 산하 예비학교(Nursery)에 다니게 된다.
예비학교 학생들 중에는 다운 증후군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지체장애인들이 있었으며 모두 언어지체를 가지고 있었다.당시 박 양을 심한 장애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예비학교에 보내면서 부모들은 눈물을 헤아리지 못하고 정신없이 복도를 뛰어나왔다고 한다. 그러던 중 1년이 지난 어느 날 박 양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연락이 학교로부터 왔다.두 인형을 가지고 서로 대화를 시키며 자신이 인형 대신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그 후 얼마 있지 않아 식구들에게도 말을 하기 시작했으며 언어지체가 있는 아이들이 보이는 정신집중 장애 증세도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했다.

박 씨는 “아이가 단 일분이라도 정상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카운티에서 주간하는 장애인 프로그램 등과 같은 기회는 놓치지 않고 백분 활용했다”며 “이런 노력의 결실로 승연이는 유치원이 끝날 무렵 제법 긴 문장을 지어서 말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이와 같은 눈부신 발전이 있은 뒤 박 양은 4학년이 된 후 특수교육 프로그램에서 나와 정상인
학교에 등교를 시작했다.그러나 그에게는 자신이 1~2학년 때는 공부를 아주 못했고 부족한 면이 있었다는 것에 대한 기억이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러한 상처는 자존심을 상하게 했고 가끔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래서 박 양의 부모는 그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서 그가 갖고 있는 장점을 찾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운동도 시켜보았고 악기도 다루게 했으나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말을 대신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던 그림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단지 표현이 좋다고만 생각됐던 그의 그림은 우연한 기회에 세상에 인정을 받게 된다.뉴저지주 아동·가정국이 뉴저지주 전체 유치원~초등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8년 아동·가정국 달력 콘테스트’에서 최종 수상자 15명에 선정된 것.인간적인 재능에서 남들보다 더딘 발전을 보였지만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던 그림을 통해 ‘서로 돕고 지내자’라는 주제에 맞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자연스럽게 나타
냈다.그는 수상 후 자신이 그린 그림이 내년 아동·가정국 달력에 나온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그동안 잃었던 자신감을 조금이나 회복했다고 한다.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희석시킨 박승연 양. 어찌 보면 중요하지 않은 작은 ‘달력 콘테스트 수상’ 소식이지만 지금 이 시간도 정상인으로서의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장애아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는 따뜻한 희망의 불씨를 던져 주리라 생각된다.


<윤재호 기자> jhyo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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