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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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의미

2007-05-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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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빛 자카란다 나무 일렬로 늘어선 길, 그리고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노랑색 수채화 같은 해변길을 달리다 보면 황혼이 다 된 이 나이에도 마음은 어린 시절 뛰어 놀던 때로 되돌아간다.
그때는 5월이면 어린이날이 있어 들떴는데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날 때문에 나는 구름 위를 떠돌듯 기대에 찬다. “작년에는 큰 딸의 선물이 신통치 않았는데 올해에는 좀 더 좋은 선물을 하겠지. 큰아들 아이는 얼마를 봉투에 넣어 줄까. 막내아들은 또 장난감 같은 선물이겠지 … ”
이렇게 공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큰 아들의 전화다. “엄마, 우리 LA에 가요. 어머니날에요”
아들 내외가 어머니날을 맞아 졸랑졸랑 세 손자들을 데리고 나를 보러 온단다. 나는 순간 나 자신에게 어이가 없었다. 이 나이에 아이들에게 바라기만 하고, 내가 해야 할 도리는 뒤로 했으니.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고 강조하시며 언제나 젊음을 간직한 채 천년만년 사실 것 같던 시어머님은 몇몇 해전 5월 저 세상으로 가셨다. 그리고는 홀로 되신 시아버님이 내게는 계시다.
내가 내 부모님 뒤로 하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장황하게 바라기만 한단 말인가. 내가 먼저 부모님께 잘 해야 아이들도 보고 배울 것이 아닌가. 나는 자책감에 빠져 들었다.
다음부터는 아버님을 먼저 생각해야지. 무엇으로 어떻게 기쁘게 해 드리나. 연로하시어 별로 좋아 하시는 음식도 없고, 아주 적은 양을 드시니 안타깝다. 의복도 별로 탐 하시지 않으신다.
결국 자주 찾아뵙고 같이 놀아 드리고 손발이 되어드리는 것이 제일인 데, 이것이 가장 쉽고도 어려운 것 같다.
시어머님 살아계실 때 우리는 큰 집 사 놓고 부모님께 같이 사시자고 권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부모님은 같이 살기보다 따로 살기를 원하셨다. 몇 년 후 큰 집이 필요 없어 팔고 작은 콘도로 이사를 하였는데 지금은 그 집이 아쉽다. 그 집이 있다면 시아버님을 모시고 살며 수시로 보살펴 드릴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 .
이제부터라도 좀 더 자주 찾아뵙고 손톱 발톱 깎아드리며 이야기도 많이 들려 드려야겠다. 내가 먼저 시아버님을 생각하여 모시면 우선 내 남편이 행복해하고, 다음 내 아이들이 나를 본보기로 할 것이다. 나아가서는 내 손자들도 그 본을 따를 것이다. 이것이 가족 간에 우애를 다지는 삶이 아니겠는가.
야외로 나가보면 각종 야생화들이 만발해서 보라꽃은 저대로, 노랑 꽃도 저대로, 빨강 꽃은 저 나름대로 각기 자태를 뽐내며 미의 컨테스트를 한다. 가족들과 하루쯤 드라이브를 하며 이 화려한 5월의 꽃 잔치에 심판이 되면 좋겠다. 5월은 가족이 함께 모여 가족 간의 사랑을 다시 한번 다짐하는 달로 삼았으면 한다.

<에바 오 /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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