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크로 - 어머니 마음
2007-05-03 (목)
고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언제나 정말로 길고 긴 여정이다. 반나절을 넘게 걸리는 비행시간이 너무 힘들어 연로하신 어머님이 자주 오시는 것도 극구 말렸었는데, 그 길을 어머님이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뵈러 다녀왔다.
영화 한 편 보지 않고 잠도 오지 않아 꼬박 뜬눈으로 이 생각 저 생각하며 그 긴 시간을 훌쩍 넘길 수 있었다.
에스크로 직업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직업들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자신보다는 손님들의 스케줄에 의해 생활이 정해진다. 출근 시간, 퇴근 시간 그리고 점심 시간은 물론이고 휴가마저도 일 때문에 조정이 불가피하다.
1년 혹은 수년만에 우리 식구들이 그리워 찾아오신 어머님마저도 손님의 스케줄 때문에 제대로 모시지 못했었다. 왜 그리도 갑작스런 약속은 많이 생기는지, 잘되던 컴퓨터가 문제가 되지를 않나 심지어 오래된 파일에 대한 문의까지 시간을 다투어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로 늘 어머니는 뒷전이었다.
식구니까, 또 어머니께서 내 걱정은 말고 직장 일을 잘 보라고 하시는 말씀 때문에, 세월이 언제까지고 기다려주는 것으로 알았다.
몇 개월 전 식사를 하면서 부동산 에이전트 한 분이 자리를 비우면 꼭 일이 터질까 두려워 아버님 장례에도 참석 못한 불효자라며 함께 신세 한탄을 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가슴에 맺히게 후회가 될 것 같아 눈 딱 감고 하루 여정의 길고도 짧은 여행을 단행한 것이다.
우리 아버님은 회사에 방문하실 때마다 주차미터를 찾느라 늘 시간이 걸리신다. 그 복잡한 윌셔 주변에 당신의 딸이 주차료로 비용을 많이 쓰게 될까봐 결코 쉽지 않을 주차를 위해 헤매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많은 손님들 중 연세가 많이 드신 노인 분들 중에는 자신의 에퀴티를 가지고 노후를 편안하게 지내기보다는 정부 보조금도 아껴 쓰고 맛난 것도 참으시며 꼬깃꼬깃 쌈짓돈까지 모아 자식들에게 넘겨주기를 문의하시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위해 재융자한 자금으로 해외여행이라도 보내드리려 생각하는 자식들보다는, 병약하신 부모님의 의료 목적으로 목돈을 마련하기보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언제나 자식이 우선 이다.
우리는 여유가 생기면 늘 어린 자식들이 걱정이고 그리고 우리의 생활이 발등의 불이다.
리버스 모기지 같은 프로그램으로 노후를 편안히 보낼 수 있는데도 구부러진 허리를 쉬며쉬며 타운에 버스를 기다리는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을 흔히 본다. 이미 오래 전 자식들의 독립과, 사업 자금을 위해 모든 재산을 물려주신 분들도 있고 크레딧이 엉망이 되 버린 자식들 대신 명의를 빌려주시느라 힘들게 서명을 하는 분들도 있다.
세금의 혜택을 위해, 좀 더 효율적인 회계상의 목적을 위해 우리는 부모님의 모든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차지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수 년 전 큰마음을 먹고 유럽 여행 다녀오시라고 목돈을 마련해 드렸는데 어머님이 다른 형제를 위해 쓰셨다고 투덜거리고 지나쳤던 일이 가슴이 미어진다.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왜 다시 마련해 드리지 못했던가 후회가 되지만 한 번 가신 어머니는 우리를 기다려 주시지를 않는다.
값비싼 수의와 중후한 관 그리고 좋은 묘자리에 모시느라 형제들이 아낌없이 몫 돈들을 내놓았지만 가슴에 사무치는 회한과 그리움을 어찌 씻을 수 있을까.
이제 해야할 일은 어머니의 마음을 새기는 일이다. 어머님이 바라셨던 자식이 되는 것, 어머님이 원하시던 우리의 생활, 어머니가 걱정하시던 건강을 챙기면서 자랑스러운 자식들이 되는 것이다.
늘 우리 모두에게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을 일깨워주시었고 누구보다도 현명하셨던 우리 어머님을 그리워하며…
제이 권 <프리마 에스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