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친구의 죽음

2007-04-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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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의미는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학창시절의 친구는 별로 조건이 필요하지 않았다. 돈이나 지식수준의 차이가 친구를 사귀는데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학생이라는 매우 큰 공통분모가 있기에 취미나 성격에 갈등이 없으면 쉽게 친구가 된다.
사회인이 되면 친구사이에 존재하는 공통분모가 매우 작아지는 반면 그 종류가 많아진다. 즉 가정, 직장, 교회, 주거 지역 등 공통분모가 여럿이다. 이들 공통분모 중 가정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직장이다. 우리 생활의 반 이상을 보내는 것이 직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장에서 좋은 친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 중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직장에서 좋은 친구를 얻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사실도 우리는 자주 경험한다.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간의 관계는 감독을 하고 당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불편한 일이 많이 생기고, 동료 간의 관계는 경쟁을 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 가까워지기가 쉽지 않다.
내가 유난히 상체가 길고 금발을 한 부르스를 만난 것은 처음으로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였다. 그는 내게 미국에서의 첫 번째 직속상사였다. 영어도 서툴고 미국 물정에도 어두운 나에게 그는 매우 무서운 상사이기도 했다. 내가 쓴 영문문서를 그가 새빨간 펜으로 고쳐서 내게 내밀게 때면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럴 때면 그가 매우 야속하기도 하고 매정한 성격의 백인이라는 느낌을 가지곤 했다.
그는 미국의 유명 대학을 졸업했고 미국 대형은행의 요직을 거쳐 내가 근무하던 은행의 아시아지역본부장이 되었기에 많은 직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나는 그에게서 영작문 연습을 톡톡히 했고 그에게서 터득한 버릇을 훗날 내 부하직원들에게 써먹곤 했다.
그에게서 나는 영어보다도 중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흔히 말하는 미국의 프로 정신이다. 나는 자주 그와 해외출장을 갔다. 일과가 얼마나 빡빡한 지 나를 호되게 훈련시킬 속셈인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신 다음날도 그는 나보다 더 일찍 약속장소에 나와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내가 한번은 농담조로 “힘들어서 당신과 함께 여행을 못하겠다”고 했더니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대답하기를 “이런 습관은 존경하던 상관에게서 배운 것이다. 프로는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 결과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과정에 충실하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많은 유능한 백인과 아시안 중에서 나를 그의 부책임자로 승진시켰을 때 나보다도 더 놀란 사람들은 같이 일하던 나의 과거 상사들이었다. 아무리 미국사회라도 매우 파격적인 인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다음 몇 년 후 그는 자기자리를 나에게 물려주었다. 이번에는 주위의 동료들보다 내가 더 놀랐다.
훗날 나는 그에게 나를 그토록 밀어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그의 답변은 간단했다. “당신은 내가 믿을 수 있는 친구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었다.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가 친구가 될수 있다는 사실을 부르스는 몸소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더 나아가 직장에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룰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에서도 법과 질서가 없어서는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직장에서의 우정에도 법과 질서가 없으면 깨어지기가 쉽다. 부르스는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나의 인격을 절대 존중해 주었고 인간적으로 동등하다는 의식을 갖게 해 주었다. 내가 가끔 반대 의견을 얘기하면 그는 “현명한 자네의 의견이니 잘 참고하겠네”하고 관대하게 받아주곤 했다.
그러던 그가 9년 동안 투병하던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가 별세하기 몇주전 뉴 멕시코의 알바카키 숲속에 살고 있는 그를 방문했다. 그가 좋아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대접했다. 그가 부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늘은 나를 찾아온 친구를 위해서 우리가 과거에 즐기던 마티니를 한잔하세”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2주후에 있을 그의 추도식에는 세계 각처에서 수십명의 옛 동료들이 알바카키에 모일 예정이다. 이들도 대부분 연령의 제약을 넘어서 부르스를 친구로 사랑하던 사람들이다. 부르스는 이들에게도 차원 높은 우정을 깨닫게 했을 것으로 믿는다. 경건하게 고인의 명복을 빈다.

벤자민 홍 새한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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