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전 코치의 성공스토리
학교서 적응 못하는 아들에
자신감 주려 축구 가르쳐
명문대서 서로 오라고 야단
듀크 졸업후 지금은 의사로
여조카들도 예일·브라운 진학
어바인의 ‘NIC Soccer Club’의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사무엘 전씨는 두 아들, 조카딸 등 6명을 하버드, 예일, 듀크 등 한인 학부모들이 군침 흘리는 명문대학에 축구특기생으로 입학시키는데 성공했다. 축구가 아니었다면 타인종 소수계에게 밀려 이런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체육특기생으로 뽑히며 입학경쟁률을 향상시킨 전 코치의 성공담을 소개한다.
현재 의사로서 UCI 대학병원에 근무 중인 아들 대니얼이 6세가 되던 때였다. 나는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구둣방을, 아내는 야간 근무하는 간호사였다. 누구나 겪는 이민 초기의 생활로 찌들어 있었던 우리 가족에게 가장 큰 피해자는 내 아들 대니얼과 데이빗이었다. 한국에서 오신 외할머니가 아이들을 돌보아 주다보니 아이들은 자연히 한국말에만 익숙해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학교에 불려가게 되었다.
여선생님은 측은한 표정으로 “영어가 미숙하고 숫기가 없는 대니얼에게 특수교육을 권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귀가하는 길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결심을 했다. 이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자긍심’을 심어주는 일이다. 마침 다니던 노스 피닉스 침례교회가 교회 축구부를 창단해 대니얼을 입단시켰다.
축구라면 나도 한가락 한다. 고등학교에서, 신학대학교에서 축구부에서 활동하였고, 특히 대한민국 육군 복무 때는 ‘군대스리가’ 대표 선수로 맹활약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운동, 축구를 가르쳐 자긍심을 심어주기로 작정했다. 구둣가게 문을 닫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 9시부터 10시 반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저녁마다 가까운 공원으로 갔다. 가로등 아래서 집중적으로 볼 다루는 법을 가르쳤다.
드디어 첫 경기가 예배 후 교회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열리게 됐다. 아빠의 가르침을 받은 대니얼은 주전으로 뛰었고, 팀 첫 승에 크게 기여했다. 5대0으로 상대를 격파했는데, 대니얼이 4골을 몰아넣었다. 경기 종료 후 대니얼은 영웅이 되었다. 대니얼 가슴에 자긍심이 자리 잡은 것은 물론이다. 그 후 학교 공부도 잘 적응했고, 주변에 친구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어바인으로 이주했다. 우연히 한 유소년 축구팀들의 운동경기를 보게 됐고, 코치와 대화를 나눴다. 아들들을 팀에 넣고 싶다는 의향을 비치자 코치는 내년 3월 초 선수 선발대회일에 오라고 했다. 그는 선수 4명 선발에 200여명의 후보들이 몰린다고 덧붙였다.
그날 이후 6개월 가까이 나는 두 아들을 데리고 피닉스에서처럼 매일 저녁 공원에서 땀을 흘리며 훈련을 시작했다. 내 두 아들은 당당히 선발되었고, 팀의 주전 자리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팀의 주장 자리, 그리고 돋보이는 플레이로 팀에서 영웅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팀과의 인연은 아이들을 선수로 만드는 것에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 경기 종료 후 팀 코치로부터 코치 자리 제의를 받았다. 물론 승낙했다. 처음에는 사업체를 찾을 때까지만 하겠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코치 샘’으로 남아 있다.
어느 날 샌디에고에서 경기가 있었다. 모자를 쓴 중년신사가 나를 찾았다. 그는 듀크 대학 축구팀 코치였다. 대니얼을 자신의 팀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나와 아내는 듀크 대학이 남부 최고의 명문 사립대인지 몰랐다. 듀크로 진학한 대니얼은 지금은 의사가 되어 있다.
둘째 아들 데이빗은 U17(17세 이하)과 U20(20세 이하) 미국축구 국가 대표팀에서 뛰었다. 여러 대학에서 조기 합격을 받았다. 스탠포드, 하버드, 예일, UCLA 등, 그러나 자신의 축구를 키우기 위해 남감리교대학(SMU)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SMU는 그 당시 미국 최고의 축구명문 대학이었다.
축구를 통한 두 아들의 대학 진출과정을 경험하면서, 나는 이 좋은 기회와 축복을 주변과 나누고 싶었다. 먼저 조카 조이스와 글로리아를 팍으로 데리고 나갔다. 이제 5~6년의 시간이 흘렀다. 코흘리개 아이들이 대학을 갈 나이가 되자 서서히 결실을 본다. 조이스는 브라운 대에 전액 장학금으로 조기 입학을 받았고, 글로리아는 예일대로부터 버블커밋먼트를, 스테파니 김은 유펜 캠프 초청을, 그리고 켈리 김 역시 하버드대 캠프 초정을 정식으로 받았다.
대학 캠프에 초청되는 학생들은 선수 사냥에 나선 각 대학 코치가 선정한다. 아무나 못가는 곳이다. 통상 1주일 진행되는 축구캠프에는 미 전국 11학년생들 중 32명 정도가 초청되고, 이 중 7~8명이 뽑힌다. 그동안 캠프에 초청받은 한인 학생들은 모두 선택됐고 큰 이변이 없는 이상 입학에 성공했다.
애들은 나를 숨은 공로자라고 치켜세운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이 축구를 즐기며, 기도하며 함께 꿈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나는 단지 코치였다. 코치는 옆에서 선수들이 잘 뛰도록 기도와 격려를 할 뿐이다. 어린 그들은 축구를 통하여 ‘자긍심’을 가지게 됐고, 결국 열매를 맺은 것이다.‘자긍심’의 또 다른 이름은‘신앙심’‘믿음’이다.
<정리=전효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