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강산은 변해도

2007-03-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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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살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에는 한인도 별로 없고 마땅한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이나 가게도 없어서 한국 음식을 해 먹기가 영 어렵다. 그나마 한국 아줌마가 운영하는 조그마한 아시안 식품점이 하나 있어서 유일하게 내가 한국 음식 재료들을 구해다가 겨우 한국 음식을 연명(?)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 한국 음식들이 대부분 냉동으로 저장해서 운송된 것들이라 꽁꽁 얼어 있었던 식품들을 녹여서 데워 먹으면 영 맛이 별로다. 한국인의 기본 반찬인 김치마저도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정말로 귀한 금(金)치가 된다. 왜냐하면 한국식 배추는 없을 뿐더러 가끔씩 마켓에 나오는 것도 썩기 일보직전 아니면 무지무지 비싸다.
지난번엔 내가 직접 만들어 보려고 큰맘 먹고 배추를 7포기 정도 샀는데 글쎄 값이 50달러도 더 되어서 눈물을 머금었던 기억이 있다. 이쯤 되니 한국 사람들이 매일 먹는 아주 기본식단메뉴인 흰 쌀밥에 빨간 고춧가루가 알맞게 물든 신선한 배추포기 김치는 나에게는 정말로 아주 귀한 반찬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산 시간이 한국에서 지낸 시간보다 더 길고 서양식 음식도 아주 잘 먹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한국 사람인지라 밥만큼은 굳이 순 한국식으로 먹어야 왠지 개운하고 뒷맛이 깔끔하다. 그래서 난 한국 음식 구하기가 아주 어려운 지역에 살고 있으면서도 꾸역꾸역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에, 김치반찬에, 된장찌개까지 보글보글 끓여먹는 한국식을 매일매일 지향하고 있다.
이렇게 순 토종 한식으로 먹어도 가끔씩은 먹고 싶어도 재료가 없어서 못해 먹는 한식들도 많다. 지난 추운 겨울에는 담백한 설렁탕국에다 깍두기가 먹고 싶어서 사골 뼈를 구하러 하루 종일 여기 저기 마켓들을 다녀봤지만 가끔씩 나오는 것들이라 결국은 구하지 못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깍두기에 쓸 무도 없어서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인터넷으로 설렁탕 라면을 사서 먹었던 경험도 있다.
LA 같이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은 워낙 한국 식당들도 많고 마켓도 많아서 한국음식이야 24시간 즐길 수 있고 또 이것저것 입맛 따라 골라 먹는 재미라도 있지만 나처럼 이런 한국 음식 구경조차 하기 힘든 지역에 살다보면 대충 비스름하게 만들어만 먹어도 감사하며 더욱 더 맛있게 먹게 된다.
이렇게 한국 음식이 귀해서인지 나의 순 토종 한국식 음식에 대한 열정과 입맛은 더더욱 높아져만 가고 그래서 밥 한 톨, 김치 하나도 아주 맛있게 감사하며 먹는다. 오늘도 나는 우리 집 냉장고에 보물단지처럼 모셔 놓고 있는 된장과 고추장이 무지 고마울(!) 따름이다.

<박소현> 군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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