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육칼럼 공짜 ‘A’는 없습니다

2007-01-22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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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주일 겨울 휴가를 하고 출근한 첫 날부터 학부모 몇 명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방학 전에 받은 자녀의 성적표가 엉망이어서 깜작 놀랐다면서 어떻게 해야 현재 받고 있는 형편없는 점수를 올릴 수 있겠느냐는 상의전화였다.
우선 담당교사와 상담을 해서 성적이 떨어진 이유를 알아보고 남은 2, 3주 동안이나마 정신 차려서 열심히 공부를 하면 현재보다는 나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조언밖에 할 수 없었다.
한 학기당 4번 5주마다 발행이 되는 성적표는 그때까지 학생들의 학업 진전상태, 공부하는 자세, 출결상태를 알려주는 유용한 보고서이다. 유의할 점은 세번째 성적표를 받을 때쯤에는 낮은 성적이나 비능률적인 공부습관을 바꾸기에는 이미 늦은 감이 있다는 것이다.
자녀들이 올바른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게 잡아주려면 늦어도 두번째 성적표를 받아보는 즉시 미비한 점의 시정을 위해서 학교 측과 공동으로 대처할 것을 권고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들/딸들이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요?” 학부모들이 물어오는 질문 중 언제나 톱을 차지하는 질문이다. “댁의 자녀는 하루에 몇 시간이나 공부합니까?” 라는 것이 나의 대답 아닌 대답이다.
보통 질문을 받은 사람이 시원한 답변을 해 줄 수 없을 때, 역으로 질문을 하는 수법을 사용해 본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 몇 시간이나 공부를 하느냐는 질문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고는 결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는 가장 평범한 진리를 강조하려는 나의 의도적인 화두라고 볼 수 있다.
중학교까지 공부를 잘했던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부터 성적이 뚝뚝 떨어지는 현상이나, 초등학교부터 영재로 인정받은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영재로 인정받지 못한 학생들보다 오히려 성적이 뒤떨어지는 현상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가 아니고, 하루에 공부한 시간이 모자라서 나온 결과라는 간단한 사실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성적은 공부한 시간에 비례해서 나오게 마련이라는 나의 지론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세운다.
일년 365일 동안 하루에 4시간씩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A’를 받을 것이고, 3시간씩 하면 ‘B’를, 2시간씩 하면 ‘C’를, 1시간씩 하면 ‘D’를, 한 시간 이하를 하면 낙제 점수를 받게 된다는 ‘설’이다.
방학이 시작되기 전날, 평소에 게으름을 피워서 성적이 시원치 않은 학생에게 이 설을 제시하였다.
‘우리 식구들 모두 내일부터 일주일 동안 스키여행을 가요. 방학 동안에는 학교도 공부도 다 잊어버리고 재미있게 놀아야 하는 것 아니에요? 아무도 선생님 말대로 365일 공부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할 수 있지. 스키여행 중이라도 새벽에 일어나서 두어 시간 공부하면 그날 하루 가벼운 마음으로 스키를 즐길 수 있지 않겠니? 스키 간다고 안하고, 친구들 생일파티라고 안하고, 명절이라고 안하고, 스포츠게임이 있는 날이라고 안하고,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안하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공부를 안하면, 365일 중 공부할 수 있는 날이 며칠이나 남겠니?”
요즈음처럼 각종 오락이 넘쳐흐르는 사회 분위기에서 매일 4시간씩 공부하라는 주문이 시대착오적인 기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최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이지만, 키보드 몇자만 눌러서 갑자기 4시간치의 공부한 효과를 얻게 되는 방법은 아직은 발견되지 않았다.
‘공짜점심이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로 공짜 ‘A’는 없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주지시켜야 할 것이다.

김 순진 <밴나이스 고교 카운슬러·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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