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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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업/ 스타이브센트고교 12년 임수영 양

2006-12-1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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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서 잠든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수영이는 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15살 소녀의 가슴에는 아버지의 거대한 자리가 텅 비어져 버릴지 모른다는 공포를 채워줄 그 무엇이 필요했다. 현재 스타이브센트 고교 12학년에 재학 중인 임수영(17)양은 시를 통해 자신의 숨겨진 감정을 잘 다스려 왔다.

직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한 아빠의 모습을 그린 Incision(절개), 수술을 받고 병상의 아빠 모습을 그린 Swan Song(백조의 노래), 어릴적 친구의 우정을 그린 Snapshot(스냅사진), 어릴적 추억을 회상하며 쓴 Going Colorblind(색맹으로 가다) 이상 4편의 자작시가 2005년 스칼라스틱 문
예 창작 대회에서 뉴욕에서 금메달을 수상했으며 전국 대회 본선에 올라 은메달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시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수영이에게 인생의 향로를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계기가 다가왔다.
2004년 10월 친구와 함께 장애우들을 만난 것이 수영에게는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었으며 앞으로 소셜워커로 활동하겠다는 수영이의 결심을 굳게 만든 것이다.수영이가 돌보는 아이는 박한나(10)양으로 정신, 언어에 장애에 걸음조차 할 수 없어 휠체어로 생활하는 힘든 중증 장애어린이다.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되는 한나를 돌보면서 수영이의 몸은 지치고 힘들지만 힘이 들면 힘이 든 만큼 큰 사랑과 보람으로 마음을 채워가게 되었다. 수영이는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너무 예쁘다. 꼭 뭘 배울 목적이 아니더라도 장애어린이들과 함께 있으면 스스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정신지체 장애우라도 이들 역시 다른 사람과 똑같은 감정, 행동, 느낌을 가지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이곳에는 사랑이 넘치고 있다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의 암 투병으로 남들보다 바쁘고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위축될 상황이라고 예상했지만 수영이는 오히려 장애우들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보냄으로써 웃음과 희망을 그려가고 있다. 5살 때 미국에 온 수영이는 한국말을 완벽하게 구사한다. 시를 좋아하며, 스펠링 비 대회 브루클린 대표, 개정 SAT 작문시험에서 만점에 가까운 12~11점 획득, 서반어도 수준급인 수영이를 두고 부친 임왕택(50)씨와 모친 박순덕(46)씨는 이런 언어 재능에 언어를 전공해 교수가 되길 희망하지만 수영이는 자신의 언어 능력을 사회사업에 접목하면 보다 더 큰 뜻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그래서 배운 것이 수화. 농아들의 검정고시를 돕기 위해 수화를 직접 배워 수학, 영어, 과학 등을 가르쳤다. 수영이의 삶은 점점 더 장애우들을 위한 삶으로 옮겨가고 있다.

레미제라블을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수영이는 뉴욕밀알선교단의 추천으로 500시간이 넘는 봉사자에게 수여되는 ‘대통령지지역사회 봉사상’을 수상했다. 매주 토요일 밀알 복지홈을 찾아 궂은일을 마다않고 장애우를 돌봤으며 주위에서는 친부모 못지않은 만큼 깊은 사랑으로 이들의 돌본다며 칭찬이 자자한 만큼 결코 수영이에게는 과분한 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암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까지 끝나 병세를 지켜보고 있는 아버지도 수영이의 이런 모습에 이제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유명 학과, 유명 대학에 진학해 자신의 미래를 위해 물질을 쫓기 보다는 순수한 봉사에 자신의 몸이 피곤해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수영이가 필요로 한곳을 찾아 나서는 마음이 기특할 뿐이다.

지난 주말 처음으로 밀알 장애우들과 겨울 산을 찾았다. 케츠킬 우드스탁 오버룩 마운틴에 휄체어를 밀어 올리며 숨을 헐떡였지만 수영이는 17년 인생에 가장 상쾌한 산행을 다녀왔다고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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