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인칼럼/ 퇴장의 미학

2006-12-08 (금) 12:00:00
크게 작게
신석환목사(뉴욕새빛교회)

얼마 전 중진 목사님 한 분이 조기 은퇴를 결정하고 후임목사를 찾아 바통을 넘겨준 다음 뉴욕을 떠났습니다. 타의였다, 자의였다, 의견은 분분했지만 그 모습을 보는 비슷한 동년배의 목사들 기분은 착잡했습니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대단한 결단이었습니다. 은퇴를 두고 이전
투구가 상식인 교회 풍토에서 그래도 그만한 이양(移讓)은 신선한 편입니다.

서울의 목사님 한 분은 은퇴를 거론하지 말고 끝없이 목회를 해달라는 교인들의 탄원 때문에 난감했으나 대승적 차원에서 은퇴를 결심하고 후임목사를 결정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나 그 소식이 그리 개운하지는 않습니다.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시보(試補)로 지낸 후에 그 때 가서 정식 후임으로 취임한다는 조건 때문입니다. 아무튼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은 진리입니다. 밀어내도 나가지 않겠다고 우기다가 교회와 목사가 함께 어려워지는 모습을 더러 목격합니다. 그런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은퇴를 결정하고 강단에서 내려오는 목사님들의 결정은 일단 보기에 아름답고 동역자의 가슴에도 무언가 도전을 주는 계기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만나면 헤어지는 회자정리는 우리들의 상식이지만, 그래도 작별을 어떻게 하느냐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입니다. 작별을 잘하고 퇴장을 잘하는 것이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입니다.
겨울은 퇴장을 교훈하는 계절입니다. 무성했던 나무들은 겨울이 되면 퇴장의 쓸쓸함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동시에 12월은 구체적 “헤어짐”의 단어를 던져줍니다. 그러나 그 헤어짐은 다시 만날 기약을 함께 보여줌으로 이별이 마냥 슬픈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기독교는 퇴장을 위한 진리인지도 모릅니다. 삶의 퇴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퇴장 후 닥칠 두 번째의 삶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것을 위한 진리이며 복음일 것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케더린 햅번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옛날에는 파티에서 언제 떠나는 게 가장 좋은지를 몰라 그 자리에 오래 머물곤 했지요. 그러나 이제는 알아요. 파티에서 언제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은지를. 파티에서 가장 추한 것은 떠날 때 떠나지 못하다가 이제 파티가 끝났다는
말을 듣고 허겁지겁 외투를 찾을 때입니다. 떠날 때 떠날 수 있는 건 용기입니다.” 그녀는 배우였으므로 자기 배역의 입장과 퇴장을 잘 조절하며 살았습니다. 우리 역시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살아가는 배우입니다. 무슨 역을 맡았건 역이 끝나면 깨끗이 무대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허우적거리다가 끌려 나가는 추한 꼴을 보여서는 아니 됩니다.

겨울은 우리에게 퇴장의 미학을 가르치는 계절입니다. 성경은 그 미학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교과서입니다. 마지막 퇴장을 아름답게 매듭짓기 위하여, 그 총정리를 위하여 하나님은 겨울을 주셨고 12월을 주셨습니다. 너무나 큰 은혜입니다. 성난 인파, 그러나 무지몽매한 군중들에 의해 법정의 박석(薄石)위로 끌려온 그분을 바라보면서 로마 총독 빌라도가 외쳤습니다. “Behold this man!” “이 사람을 보라!” 그는 마치 연극 무대에서 막을 내리는 사람처럼 그렇게 외쳤습니다. 그의 외침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퇴장의 신호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퇴장은 또 다른 시작이요 출발이었음을 우리는 믿고 있지 않습니까?

그 사건을 일러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아름다운 퇴장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입니다. 인간사에는 피날레가 있고 피리어드가 있지만 신앙인의 퇴장은 콤마일 뿐입니다. 다시 일어나고 다시 출발하고 다시 세워지는 영생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금 시작되는 당신의 겨울은 어떤 단어로 요약할 것입니까? 이제 우리가 보는 창밖으로는 삭막한 겨울이 흐르겠지만 당신의 내면은 무성한 여름으로 채우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무껍질처럼 건조한 일상을 뒤로 하고 오히려 차가운 겨울바람이 내 가슴을 시원하게 하도록 영혼의 창문을 활짝 열어놓기를 바랍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