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육칼럼 ‘목표수정을 했습니다’

2006-12-04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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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12학년 학생인 다니엘은 중학교 때부터 꿈꾸어왔던 장래의 희망을 포기하고 어머니의 권유로 전혀 다른 전공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영어 선생님으로부터 글 잘 쓴다는 칭찬을 들었고 자신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밝고 재미있는 세상 얘기를 쓰는 저널리스트가 되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었던 다니엘에게 어머니는 간호사의 직업을 권유한 것이다.
다니엘의 어머니는 웨스트 LA에 있는 큰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이다. 누나도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LA에 있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고 이모와 사촌 한 명도 간호사니 그야말로 간호사 집안이라고 불릴만 하다.
다니엘의 부모가 미국으로 이민 왔던 80년대까지도 필리핀은 소수의 부유한 특권층을 제외하고 절대다수가 가난 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중산층생활을 할 수 없는 현실이 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대거 미국 이민의 길을 택한 이유였다.
다니엘 어머니에 의하면, 원래 필리핀에서는 의료계통의 직업이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직업이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능력이 되는대로 의사, 간호사, 약사직을 선택하고 미국에 와서도 우선적으로 의료계에서 직업을 찾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LA지역 에 있는 웬만한 병원에 가면 간호보조사에서부터 수간호사에 이르기까지 필리핀 출신의 간호사가 많은 이유를 알게되었다.
다니엘의 어머니는 아들이 오랫동안 희망해 왔던 저널리스트의 꿈을 포기하는 것이 유감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미국에 와서 자리잡고 중산층으로 살기 위해서는 저널리스트보다는 간호사직을 택하는 것이 더 빠른 길이라는 것을 아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지만 만약 아들이 “자리잡고 잘 사는 것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주장을 했으면 억지로 간호사직을 강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어머니의 말이었다.
다니엘은 며칠동안 생각해보다가 스스로 어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간호사가 되기로 결정을 내렸다.
간호사의 집안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간호사직에 대한 이해를 넓혀온 것이 아마 이런 결정을 내리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꿈보다는 현실을 택하기로 일단 마음을 정하고 나니 그동안 혼자서 고민했던 여러 가지 문제거리가 해결된 기분이라는 다니엘의 말이었다.
한가지 예로 캘리포니아를 떠나 저널리즘이 유명한 타주에 있는 대학을 가고 싶었는데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치 않아서 혼자서 고민 중이었다고 했다. 이제 그 고민을 안해도 되는 것이다.
빨리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 싶다는 일념에서 자녀의 전공선택의 첫번째 조건으로 안정된 수입을 꼽는 것이 과연 부모로서 자녀교육을 옳게 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다니엘의 경우처럼 비교적 순탄하게 합의를 본 경우는 다행이지만, 부모와 자녀 사이에 전공문제로 의견이 합치되지 않는 가정도 많다.
자녀의 의사를 들어보지도 않고 의과를 전공하라고 압력을 넣는 경우가 좋은 예이다.
일생의 중대한 결정인 전공선택을 하는 데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지속적인 대화와 이해하고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 하다.
부모쪽이던 자녀쪽이던 어느 한쪽에서는 본래의 목표를 수정해야 하는데 목표수정이 그렇게 큰 재난은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의 경험이 보여주고 있다.

김 순진 <밴나이스 고교 카운슬러·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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