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육 칼럼 ‘복 짓는 계절’

2006-12-04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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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거지들에겐 돈 한 푼도 줄 필요가 없어. 다 게을러 빠져서 일도 안하고 매일 구걸만 한단 말이야. 너도 저렇게 놀고먹는 인간들에게 절대 인정을 베풀지 마.” 차들이 멈춰서는 신호등에서 돈을 구걸하는 걸인을 보고 한 어머니가 단호한 목소리로 옆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말한다.
바로 그때 그 뒤에 정지한 자동차의 창문이 내려가며 또 다른 어머니가 1달러짜리 한 장을 창밖으로 내민다. 걸인은 곧 뛰어와서 연방 고맙다며 인사한다. “얘야, 너는 저런 사람들을 항상 불쌍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 장차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잘 살 수 있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큰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어머니 옆에 앉아 있던 아이의 눈이 순간 반짝거린다.
어쩌면 1달러 차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1달러를 받은 걸인이나, 1달러도 아까워 한 어머니나 그리고 1달러를 건네 준 그 어머니, 그 누구의 인생도 1달러로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사실 1달러는 너무 적은 돈이라 빵 하나 제대로 사먹기 힘들다.
하지만 그 적은 돈 1달러를 아까워한 차가운 마음의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옆에 있는 아이들의 마음도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지길 바랐다. 그에 비해 뒤의 어머니는 1달러로 아이의 마음에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불어 넣어주었다. 빵 하나 제대로 사먹을 수 없는 1달러로 어쩌면 그 어머니는 아이에게 이미 아름다운 미래를 사 주었을 수도 있다.
우리들은 남에게 베푸는 것은 별로 없으면서도 복 받기는 간절히 원한다. 의식 중 혹은 무의식중으로든 우리들의 복에 대한 끊임없는 애착과 갈망은 거의 병적이다. 교회로, 성당으로, 절로 복을 빌러 가고 달과 별을 보고도 복을 빌고 심지어 잘 생긴 돼지머리를 골라가며 복을 빈다.
은행에 돈 한 푼 저축해 놓지 않고서도 자기 돈 달라며 맡겨 놓지 않은 돈 찾아가겠다고 우기는 사람들처럼 우리들은 평소에 복 한 점 지어놓지 않고서도 복 달라고, 그것도 많이 달라고 떼쓴다. 이미 받은 복만 세어 보아도 자기가 여태껏 지은 복보다 몇 곱절 더 많을 텐데 이미 받은 복에도 감사 한번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계속 더 많이 달라고만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도둑심보인가.
세상은 참 공평하다. 어떤 사람은 공짜로 굴러들어오는 복에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가 하면 또 지지리도 복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잘못된 착시현상일 뿐이다.
그냥 굴러들어온 복 치고 진정으로 의미 있거나 오래가는 복 없고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복이라고 여기면 진짜로 복 받은 것이고 또 앞으로 받을 복도 많게 된다. 어느 것 하나 짓지 않고 생겨나는 법이 없으며 복이란 지어놓기만 하면 때가 되면 결국 몇 배가 되어 다시 돌아오게 마련이다. 따뜻한 마음씨의 어머니가 1달러로 복을 지을 때 옆에 앉은 아이의 마음에 엄청나게 큰 복의 씨앗이 심어졌음이 분명하다.
어느 듯 벌써 또 연말이다. 복 짓기 좋은 계절이 왔다. 어떻게 시간이 이처럼 빨리 지나갈 수 있는가 한해를 돌아볼 때 얼마나 많은 복을 지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지어놓은 복이 없으면 몇 주 더 지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듣더라도 받을 것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불쌍한 이웃들을 돕는 것부터 시작하자. 지금 복을 지어놓으면 몇 곱절이 되어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 가족들에게 결국 다시 돌아온다. 진정 복 짓기 좋은 계절이다.

홍영권 (USC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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