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11-25 (토) 12:00:00
눈 뜨라우 !
“눈 뜨라우! 와 자꾸 눈감고 다니네? 니 그러다간 다친다야. 니 엄마 누구네?”
일주일에 나흘 우리 집에 오시는 할머니가 계시다. 연세는 여든을 훌쩍 넘으셨고, 예쁘게(?) 치매가 걸리신 할머니를 엄마가 오후시간에 봐 드리고 있다. 할머니를 봐 드리던 엄마가 한국을 가셨으니 할머니 보는 일은 바로 나의 일이 되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치매환자의 기본은 계속 반복해서 묻기, 끊임없이 먹기, 금방 한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데 있다. 할머니가 나하고만 계실 땐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TV도 보시지만 승욱이가 학교 갔다 오면 계속해서 우리 승욱이만 관찰하신다.
“저, 저, 저, 저러다 다치겠다야. 눈감고 걸으면 다치는 거 모르네? 네 엄마 누구네?” 북한 사투리를 쓰시는 할머니는 계속해서 승욱이가 눈을 감고 걸어 다닌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원래 눈이 저런데… 쩝) 나를 쳐다보시면서 “자 엄마는 누구야요?” 그러면 난 “전데요, 애가 태어나서부터 눈이 저렇게 생겼구요, 앞을 못 봐요”라고 말씀을 드린다.
아, 그런데 이 질문을 5분 간격으로 물어보니 아주 돌아버릴 지경이다. 난 할머니가 승욱이를 보면서 말을 시작하시려면 아예 내가 선수 쳐서 “쟤 엄마는 저구요, 눈을 못 봐요”라고 말을 해 버린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치매 할머니의 눈에도 승욱이 눈이 예쁘지 않은가 보다. 나야 승욱이가 태어나서부터 오늘날까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아서 모르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이나 아이들의 눈에 승욱이 눈이 좀 이상하겠지.(난 세상에서 우리 승욱이 눈이 제일 예쁜데. 이 팔불출 엄마. 하긴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하니까.)
승욱이 학교에 오래간만에 들렀다가 승욱이 눈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했다. 승욱이의 눈동자는 태어나서부터 전혀 발육이 되지 않아 눈동자가 아주 작다. 두상은 나이에 맞게 자라는 반면 눈동자는 전혀 발육이 되지 않으니 눈이 푹 꺼져 들어가서 얼굴 모양까지 약간 일그러져 보인다.
선생님은 예쁜 눈을 수술해 줘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어차피 승욱이의 눈은 전혀 기능을 상실한 상태이니 눈동자 성형을 해주면 외관상으로 보기가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승욱이가 듣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승욱이 눈을 보고 이런 저런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아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잘 생각해 보고 눈 성형을 해 보자고 했다.
승욱이가 예쁜 눈을 가지면 얼굴이 참 반듯할 것이라는 생각이 굴뚝같다. 그런데 반면으로 의학이 날로 발전하고 있고 언젠가 가지고 있는 눈으로 보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한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그의 논문이 발표되었을 때 나 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장애인들과 가족들이 신체적 장애가 극복되는 날이 곧 올 것이라는 희망을 많이 가졌다. 그러기에 그 논문이 허위라는 것이 밝혀졌을 땐 그만큼 실망감과 배신감도 컸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기만하는 그런 사건들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생님과의 승욱이 눈 이야기가 있은 지 얼마 후 학교에서 승욱이에게 선물로 예쁜 눈을 가질 수 있는 수술비를 지원해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아, 너무 고민스럽다. 수술을 하려면 원래의 눈은 제거하고 플래스틱 눈을 이식하는 것인데, 혹시 앞으로 획기적인 의학기술이 생기면 어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이 엄마.
오늘도 우리 집에 오시는 할머니는 승욱이를 향해 “눈뜨라우. 눈감고 다니면 다친다야!”
“네. 할머니 저도 우리 승욱이가 눈이 확 떠졌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저희 가정의 소망입니다.”
김 민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