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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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진귀한 요리 잔치

2006-11-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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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국물 보양식 끝내줘요”

곰 고기를 먹는다? 한인들에게는 약간 생소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LA 동부장로교회(담임목사 이용규)의 교인들이 은근히 기다리는 행사가 있다. 수십 년간 곰 사냥을 즐겨온 이 교회 장로 조선종(77)씨가 교인들 800여명을 위해 마련하는 진귀한 ‘곰 요리’ 시식회다.
이 시식회는 벌써 20년째 이어오는데 이유는 곰고기에 대한 조씨의 남다른 건강 철학 때문이다. 한방학적으로 곰고기는 보양 식품으로 유명하다.
만병통치 웅담과 허리, 관절 등에 좋은 힘줄, 보드라운 육질등등 한여름 진땀으로 빠져나간 기력을 되살려주는 최고의 보약으로 꼽힌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중국에서는 여덟가지 진귀한 요리중 하나로 곰 요리 중 ‘곰 발바닥’을 꼽는다.

조선종씨, 교우들 위해 20년째 곰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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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종씨가 잡은 곰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곰 요리를 처음 대하는 교인들의 첫 반응은 대부분 거부감이다. 그러나 일단 맛을 보고나면 부드럽고 담백한 육질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호기심 반 의구심 반으로 곰 요리를 맛보았던 교인들도 어느새 곰 요리 예찬론자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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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깨와 풋 배추, 할로피뇨 등 15가지 야채를 넣고 끓여 낸 곰 고기 전골>

이제는 해마다 조씨가 준비하는 곰 요리 만찬을 기다릴 정도다. 이 때문에 조씨는 곰 사냥을 나설 때마다 커다란 트럭을 대동한다. 작게는 150~160파운드, 크게는 350파운드에 달하는 곰을 옮기기 위해서다. 사냥으로 잡은 곰은 급속 냉동시켜 산 속의 냉동기에 넣어 놓고 사냥을 모두 마친 후 고기만 따로 분리해 가져온다.
곰 고기는 워낙 귀한 음식이지만 가족 같은 교인들을 배불리 대접하고픈 마음이 먼저라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고스란히 교인 들 몫으로 대접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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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종씨가 곰사냥을 하고 있다>

동부장로교회 가봤더니 교인 800명 “가을 만찬 기다려져요”

10월의 마지막 일요일, 동부장로교회는 구수한 냄새가 가득 찼다.
이날은 교인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곰 요리 만찬이 펼쳐진 날. 들깨와 마늘로 양념 된 부드러운 곰 고기와 구수한 전골 국물이 부어진 따끈따끈한 곰 요리가 800여명의 교인에게 서브됐다.
이날의 곰 요리는 집사로 시무하는 고성옥(52)씨의 솜씨로 만들어졌다. 고씨는 평소 흑염소 요리를 즐겨 만드는데 곰과 흑염소 모두 야생동물이라 비슷한 조리법을 응용했다고 설명한다.
이날의 곰 요리 만찬을 위해 고씨는 물론 교인들 여섯 명이 3일 동안 요리에 매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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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만찬을 준비한 고성희씨와 김해란씨가 전골 국물을 끓이고 있다>

이틀 전부터 교회에 모여 고기의 피를 빼고 기름을 걷어내는 작업을 했는데 첫 날은 오후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꼬박 고기를 다듬었다.
다음 날은 풋 배추를 삶고 야채를 다듬고 들어갈 재료들을 준비했으며, 당일 날은 대형 솥에 전골 육수와 재료들을 넣고 끓어내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고기 다듬고 끓이고 6명이 3일간 매달려 흑염소 전골식 마련
처음엔 거부감 많지만 부드러운 고기맛 반해“한 그릇 더” 연발

800여명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모두들 맛있게 식사할 교인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이었다.
“곰 요리라 하면 생소하게 느끼시고 거부감을 갖는 교인들이 많이 있지만 느끼함을 없애기 위해 들깨와 야채를 듬뿍 넣어 흑염소 전골과 비슷한 방식으로 끓였더니 교인들이 좋아하세요. 노인들의 건강을 위한 보양식으로도 최고지요”
고씨는 요리에 소금이나 조미료는 일체 넣지 않고 천연재료만을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덕분에 담백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했다.
곰 고기는 흑염소 고기보다 더 부드러워 소화기능이 좋지 않은 노인들에게도 그만 이라는 설명.
이처럼 곰 요리는 일반 신분(?)으로는 맛보기 힘든 희귀하면서도 진귀한 요리인데다, 맛과 영양도 뛰어나니 동부장로교회 교회의 특이한 곰 요리 만찬이 교인들에게 기다려지는 행사로 자리잡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홍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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