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에셀나무/ 은혜로 삽니다.

2006-11-04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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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전에 시카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커플이 결혼식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피로연 장소는 시카고에서 최고 좋은 호텔로 정하고 경비는 선불로 다 치렀습니다. 그런데 결혼 날짜가 1주일 앞으로 다가오자 예비 신랑이 편지 한 장 달랑 남기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홀로 남은 예비 신부의 심정은 절망 그 자체였지만 정신을 차리고 주례 목사에게 연락을 시작으로 결혼 준비를 하나씩 취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혼식장 예약 취소했지만 호텔 피로연 장소가 문제였습니다. 피로연 경비는 이미 수만 달러가 지불됐지만 며칠을 앞둔 상태에서 예약 취소하면 경비는 한 푼도 건질 수 없이 다 날라 가 버리게 되었습니다. 호텔 매니저도 딱한 사정을 인정했지만 호텔 규정상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여성은 고민하다가 이미 지불된 연회를 베풀기로 했습니다. 초청 대상자는 시카고 호텔 주변의 모든 홈 리스들로 정했습니다.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냄새나고 누더기 걸치고 샤워도 못한 홈 리스들이 최고급 호텔에서 최고급 음식을 웨이터와 웨이츠레스의 극진한 시중을 받으면서 밤늦도록 파티를 즐겼습니다. 홈 리스들은 마음대로 술도 마시고 밴드에 맞추어 어울려 춤도 추면서 밤늦도록 즐겼습니다. 손님 자격이 전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자격 있는 사람처럼 마음껏 즐겼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일어난다고 말씀하여 주십니다(누가복음 14:15-24).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마련하고 많은 사람을 초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한결같이 바쁘다면서, 못가서 미안하다고 사양하였습니다. 잔치를 마련한 집주인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또 화도 났습니다. 그래서 일꾼들에게 명하여 거리와 산, 개울가로 다니면서 가난한 자들과 불구자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에게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도록 했습니다.(눅 15:23)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떡을 먹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눅 15:15), 전혀 잔치에 초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인생 자체도 은혜입니다. 이민의 삶도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땅에 자격 없는 우리들이 초청받아 하나님이 마련하신 잔칫상인 인생을 선물로 받고 오늘도 마음껏 누리고 즐기면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철따라 단풍을 들도록 해 테이블보도
갈아주십니다. 천지를 붉게 물들인 이 추수의 계절에 우리 앞에 펼쳐진 인생의 잔칫상을 크든, 작든, 많든, 적든, 감사하면서 삽시다. 인생은 그 자체가 은혜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에셀 나무를 심으며…

글 : 호성기 필라 안디옥 교회 담임 목사
삽화 : 오지연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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