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 법문/ 붓다의 침묵
2006-10-10 (화) 12:00:00
석보화스님(워싱턴세계사 일화선원)
성인들이 인류를 일깨운 광대무변한 진리를 자신이 직접 명철하게 깨달아 낱낱이 차별화된 일상생활에서 틈 새 없이 활용하여 남을 일깨운다면 얼마나 장쾌하겠는가? 그리스어의 메타노이아(Metanoia)는 불교에서 말하는 참회, 즉 바깥의 모든 허물을 스스로 돌이켜(Introspecting upon oneself) 깨닫는다는 뜻과 같다. 돌이킴이 지극하여 마침내 자기가 자기를 보지 못하며 절대자가 다시 절대자를 알 수 없고, 불이 불을 태울 수 없고, 물이 물을 적실 수 없는 경지에서 성인들이 궁극적으로 깨달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진리를 바깥에서 찾는 자를 외도(外道·Outsider)라고 한다. 그들을 외도라고 하는 이유는 교리를 모른다거나 설(說)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 단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외도가 붓다에게 와서 물었다. “말이 있는 것도 묻지 않고, 말이 없는 것도 묻지 않습니다.” 이 때 붓다는 다만 침묵으로 응대하였다. 이에 외도는 활짝 깨닫고, “오! 대자대비하신 세존이시여, 저의 모든 미혹의 구름을 벗겨 저를 깨닫게 하셨나이다”하고 찬탄하였다. 이 대화에서 무슨 까닭으로 붓다는 침묵으로 응대한 것일까? 누군가 산승에게 다가와서 묻는다면, “앞산에서 우레가 쳤다”하리니 좋은 시절이 가기 전에 우리 함께 공들이고 탁마해 보자. 눈과 귀가 원래 스스로
자취가 없거늘, 그 가운데 뚜렷이 깨친 자가 누구던가? 모양 없음 또한 없는 곳에서 온몸을 뒤집으니, 개 짖고 나귀 우는 것이 사는 길에 통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