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조창인 씨는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 얼굴이나 남긴 말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답니다. 친구의 아들이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모습과 그 아들을 살리기 위하여 노력하는 친구를 보면서 쓴 소설이 ‘가시고기’였습니다. 몇 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가시고기’를 다시 읽었습니다. 찡한 감동은 처음 읽을 때보다 더 했습니다.
지난 주 두 아들을 학교로 데려다 주는 차 속에서 ‘가시고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좀 치사한 것 같았지만 아빠와 엄마가 얼마나 희생하면서 자기들을 위하여 사는지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슬쩍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조용히 듣고만 있는 아이들에게 어떤 때는 설교조로, 어떤 때는 설득조로, 어떤 때는 신파조로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엄마 가시고기는 알을 낳으면 싹 어디론가 가버린단다. 그러면 아빠 가시고기가 알들을 메기나 장어로부터 생명을 던져 지킨단다. 그러다 알들이 깨어나 새끼고기가 되면 아빠 고기는 돌에 자기의 머리를 으깨고 죽어 새끼고기의 먹이가 된단다.”
이쯤 이야기 하면서 “이 아빠가 너희들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는 줄 아느냐”하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봐라, 아빠 엄마와 너희들을 위하여 예수님이 그렇게 돌아가셨어.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게 된 것은 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
여 죽으셨기 때문이지”라면서 헛기침을 하고 끝을 맺었습니다. 결론은 예수님이 가시고기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내가 굉장히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들 때가 많습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성도들도 가끔 시험에 들게 되는 이유가 자신이 가시고기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 때가 많은 것을 봅니다. “나는 희생했는데 당신들은 뭐요?” 이런 마음이 쑥 들어오면 사람들이 밉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정에서건, 교회에서건, 일어나는 문제 중의 하나가 “나는 이렇게 희생했는데 너희들은 뭐냐?”하는 것입니다.
조창인 씨의 ‘가시고기’에 나오는 아빠는 적어도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어린 아들을 간병하다가 간암에 걸려, 아들은 살리고 자신은 죽었지만 전혀 생색을 내지 않았습니다. 두 번 읽은 ‘가시고기’는 소설의 감동으로만 끝나지 않고 예수님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고전 15:10) 많이 일한 사람들이 생색내지 않고, 알아달라고 소리치지 않고, 조용히 ‘가시고기’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에셀 나무를 심으며…
글 : 호성기 필라 안디옥 교회 담임 목사
삽화 : 오지연 일러스트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