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육칼럼 부부는 분화(分化)되고자 한다

2006-07-24 (월) 12:00:00
크게 작게
90년대 후반의 베스트셀러 Passionate Marriage에서 David Schnarch은 세포생물학의 분화이론을 부부문제에 도입하여서 미국 중산 지식층에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단세포 수정란이 분열 증식하여 다세포 조직체로 발달하면서 각기 다른 모습과 기능을 지닌 기관(피부, 뇌, 심장, 혈액 등)들로 발달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기관들이 홀로 존재하지 않고 생명체 전체기능 중 일부분의 역할을 하는 현상을 분화(differentiation)라고 한다. Schnarch은 분화의 개념을 부부관계에 도입하여 사람은 독립된 인격체로 발달하면서 동시에 공동체(가정, 사회)의 구성원 역할을 하는 분화를 궁극적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그는 분화를 다른 사람들의 존재가 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때 그들과 시간, 공간적으로 근접한 상태에서 내 정체성을 유지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부부가 일상생활에서 분화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평상시 행동과는 반대되는 약간 익숙지 못한 행동방식을 요구한다. 가정에서 부부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예로 들어 분화행동을 알아보자.
에스크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비비안은 종일을 서류더미와 씨름하고 주차장 같은 교통체증 속에서 시달리다 기진맥진하여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신문, 잡지, 옷가지 등으로 어수선한 거실, 여자골프 보느라 자신이 들어오는지도 모르는 남편과 컴퓨터에 매달려 정신이 없는 아이들이다. 얼굴화장도 채 지우지 못하고 나오는데 남편이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저녁 빨리 준비해” 한다.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올라오는 분함을 겨우 삼키고 “여보, 식사준비 나 좀 도와 줘” 하는데 남편은 “안 돼. 골프 끝까지 봐야 돼.” 이런 상황에서 이 문제를 분화로 한 번 해결해보자.
(1)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실행에 옮긴다. “여보. 나 무척 힘들어. 당신이 좀 도와주지 않으면 나 혼자서는 힘들어서 저녁 준비 못해.” 컴퓨터에 매달려있는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힘드니까 너희들 컴퓨터 끄고 나와서 엄마 도와줘. 안 그러면 저녁 못 먹게 돼.” 자신의 생각을 가족들에게 정확하게 통보하고 통보한 내용대로 실천한다.
(2)다른 곳으로 피하거나 감정을 속으로 삭이지 않는다. “저 인간들이 내 남편, 내 자식이야?” 하고 친정식구, 친구들과 전화통에 매달리거나 그릇을 우당탕거리면서 식사를 준비하지 않고 가족들을 마주한 채로 자신의 통보내용을 실천한다.
(3)남편, 자녀들의 반사적 감정행동을 무마하고자 시도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못하는 남편이 화를 내거나 아이들이 짜증을 부리면 그들의 화, 짜증을 가라앉히겠다고 시도하지 않는다. 남편의 분노, 자녀의 무심함을 견디기 힘이 들어서 남편과 아이들의 감정을 무마시키고 행동을 조정하고자 하는 회유적인 언행을 멈춘다.
(4)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이들의 분노, 짜증을 수용한다. 남편, 자녀의 분노와 짜증은 그들에게는 이유 있는 감정표현이므로 이를 그대로 수용한다. “아, 이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구나.” 바로 그것을 수용하는 것을 말한다.
(5)자신의 내면세계에서 생겨난 감정상태도 그대로 수용한다. 자신의 분노, 좌절, 짜증을 그대로 살펴보고 “너무 속상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인정해준다.
(6)그리고 “나 지금 너무 잘하고 있어!” “내가 봐도 대견하네.” 이렇게 스스로의 등을 두드려 준다.
분화는 항상 상대방을 고치고자 시도하는 우리의 일상행동방식과는 다른 개념의 행동기술이라서 익히려면 상당한 연습을 필요로 한다. 다행히 일상사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이므로 많은 연습도 가능하다. 일단 익히고 나면 부부의 삶에서 여태 경험해보지 못했던 한 차원 승화된 삶이 기다리고 있다.
(818)360-4987
rksohn@yahoo.com

리차드 손
<심리학 박사 >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