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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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ero to Zero’

2006-01-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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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대 뉴스에 관한 스토리를 신문에서 읽었다. 연합통신사 멤버들이 뽑은 미국 국내와 국외에서 일어난 10대 뉴스 중 넘버원 스토리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뽑혔다. 나 역시 그들의 선택에 동의한다. 카트리나야말로 큰 스토리였다. 나머지 9개 뉴스들을 순서대로 다음과 같이 열거하였다: 2. 교황이 바뀐 것 3. 이라크 전쟁 4. 연방 대법원 변화 5. 기름 값 상승 6. 런던 폭탄 사건 7. 아시아에서 일어난 지진들 8. 테리 샤이보 사건 9, CIA 누출, 10. 부시 대통령 인기 하락. 이 뉴스들은 미국 언론인들의 견해이다.
10대 뉴스에서 어떤 뉴스가 빠진 것 같지 않은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그 역사적인 사건이 어디 한마디라도 언급되어 있는가. 줄기세포에 대한 이야기가 리스트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그 유명한 황우석이라는 이름을 왜 찾아볼 수 없을까.
세계 10대 뉴스에 줄기세포 이야기가 빠진 것이 한국말 신문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놀라울지 모르겠다. 2005년 한해동안 ‘복제 된 개’ ‘줄기 세포’ ‘황우석 교수’에 관한 뉴스가 하루도 빠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 중에 황우석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그는 한국이 생긴 이래 최고의 영웅이라는 명성까지 얻었다.
허나 불행하게도 지난 12월 그는 영웅의 자리에서 사기꾼이라는 지탄까지 받으며 hero에서 zero로 추락하였다. 그가 연구하여 만들었다는 맞춤형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사실이 폭로되었고, 그는 대학교 교수직에서 사임을 하는 지경에 달하였다.
나는 한국에서 일어났던 복제에 관한 이야기가 과학분야의 관심사가 되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온 국민이 일년 내내 과학뉴스에 어떻게 그처럼 열광할 수 있을까. 한국 국민이 센스를 잃어버린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서 한국에서 일어난 복제에 관한 뉴스를 가끔 읽었다. 반면에 아내가 읽는 한국 신문에는 몇 페이지씩 줄기세포에 관한 기사로 가득하다. 아내는 “신문 절반이 황우석이라는 사람에 관한 기사이다”라고 중얼거린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일이 바뀌어지고 있다. 줄기세포 연구에 문제가 있다고 처음 발표되었을 때 한국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구의 성과가 허위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분노와 실망 그리고 수치로 한국인 전체가 고통을 겪고 있다. 줄기세포 연구 성과가 한국인의 뛰어난 머리, 근면, 젓가락 문화 덕분이라고까지 자랑하던 뉴스 미디어의 태도가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요즈음 뉴스는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며 자문하는 분위기이다.
한국 줄기세포 이야기는 머리 좋고, 사교적이고 자신만만한 한 과학자 소개로 시작된다. 뛰어난 한 과학자가 세계 생명공학계에서 일등 자리를 성취하고 싶어하는 욕망과 세계 최고를 추구하는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이 함께 하며 이야기는 점점 커졌다. 대통령이 그를 한국의 자랑스러운 아들이며 나라의 영웅이라고 높이면서 이야기는 더 크게 확대되었다.
전국 미디어가 이 수의사 한 사람을 엘비스 프레슬리와 아인슈타인을 합성한 록스타 과학자로 만들었다. 유명해진 인기 과학자는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이때 한국에서 누군가가 그를 의심하였어야 하였다. 달리기 같은 경기에서 한 선수가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앞서면 우리는 약물복용을 의심하며 검증을 요구한다. 한 학생이 갑자기 다른 학생들과 너무 차이가 나는 성적을 내면 우리는 주의 깊게 살핀다.
2005년 12월에 한국에서 생긴 사건이 한 과학자를, 대학교를, 정부를, 미디어를 교만한 자리에서 겸허한 자리로 내려오게 한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끝났으면 좋겠다.
잠언의 한 구절을 음미하여 본다. “교만은 파멸의 선봉장이고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 겸손한 자들과 함께 사는 것이 교만한 자들과 빼앗은 물건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


<교육학 박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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