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삼풍백화점

2005-12-3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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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외

무너져 내린 고도성장의 상징

이 책은 2006년 제51회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이다. 수상작은 ‘문학과 사회’로 등단한 정이현의 단편소설 ‘삼풍백화점’이며 이 책에는 수상작가의 자선작, 한창훈 정지아 등 여러작가들의 수상후보작을 함께 싣고있다.
정이현의 ‘삼풍백화점’은 벌써 우리 기억에 가물가물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우리의 고도성장의 상징 같은 부정과 날림의 성이 단 일 초 동안에 무너져내리면서 그 안에 있던 오백여명은 대부분 구조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어떤 대형사고든지 기적적인 구사일생이나 특별히 억울한 죽음 아니면 유명인사가 당한 불행에 관심이 집중되다가 잊혀진다. 10년이면 잊혀지기 충분한 시간이다.
작가는 10년 전 그날까지의 시간을 주변 환경과 그 시절만의 독톡한 문화현상을 통해 사실적으로 압축해나간다. 오백여 명이라는 숫자로 집단화된 죽음 중에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한 아가씨의 죽음을, 비록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살다 갔을지라도 그녀의 생애는 아무하고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답고 고유한 단 하나의 세계였다는 것을 치밀하고 깊은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작가 특유의 통통 튀는 문장의 경쾌함은 그 뒤에 숨어있는 억제된 쓸쓸함으로 인하여 문득 긴 여운으로 변한다.
수상후보작 정지아의 ‘풍경’은 ‘빨치산의 딸’로 알려진 작가답게 여러 아들들이 빨치산이 되어 사라지고 남은 식구들인 치매 걸린 노모와 장가도 한번 못 가고 늙어 가는 아들이 깊은 산중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수채화처럼 담담하게 그렸다. 쏜살같은 세월에 미처 편승하지 못하고 낡은 기둥처럼 지난 세월을 버티고 살아가는 모습을 가슴을 뭉클하게, 흥분하지도 설득하지도 않으면서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또 다른 수상후보작 한창훈의 ‘나는 여기가 좋다’는 그의 삶과도 밀접한 그래서 잘 알고 있는 세계, 어촌의 선주 이야기다. 배를 팔아버릴 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간 선주가 아내와 함께 마지막으로 자기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심정을 빌어 피폐해가는 어촌을 갈치 비늘처럼 싱싱하게 그린다.
올해는 신예작가들이 눈부신 약진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들이 보여주는 눈부신 변화와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는 문학의 위기설이 팽배한 가운데도 한국소설의 미래가 아주 밝을 것임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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