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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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의 기도

2005-12-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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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깊어 가는 12월, 벽에 덩그러니 걸려있는 한 장의 달력이 마치 나목에 붙어있는 나무 잎새처럼 쓸쓸하고 초라하게 보인다. 숨가쁘게 달려온 2005년이 서서히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세월의 흐름은 새로움을 위한 순리, 인생의 영원한 고리에 이어져 순환되고 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세모지만 유난히 올해는 많은 감회로 다가온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며 누구나 만남의 끝에는 이별이 있다. 이렇게 삶의 유한함과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숙명에 대해 깨닫게 될 때 삶을 바라보는 안목이 달라진다.
종말이 모든 것의 소멸과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역설적으로 시작의 첫머리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 마지막 한 달이 새롭게 다가오는 새해를 한층 값지고 뜻깊게 맞이할 수 있도록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 이따금 나는 창가의 나무를 가만히 바라본다. 나무는 사계, 자연의 순리에 따라 새싹을 돋우고 꽃을 피운다. 잎이 커질 때마다 모든 게 순탄하리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뭄이 오고 태풍이 몰아닥쳐 온몸에 상처를 입어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계절이 바뀌면 또 다시 꽃 피우고 열매를 맺겠다고 다짐할 뿐이리라.
자연의 가르침과 같이 우리 인생도 늘 순탄하지만은 않다. 비바람 몰아치는 역경 속에서 인간은 삶의 진지함에 눈뜨고 또 전진하며 살아간다.
세모는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나눔의 계절이다. 내일을 향해 끝나지 않은 희망의 노래가 울리는 12월! 나 혼자만 행복해지기보다는 함께 기쁨을 나누고 행복을 나누자. 가진 것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이웃 사랑으로 눈을 돌릴 때이다. 자신의 작은 물질과 사랑을 나누어 줄 때 충만한 기쁨, 충만한 감사가 넘친다.
이와 함께 바른 인간의 길, 인생의 참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늘 바쁜 이민의 삶 속에서 인생의 참 의미를 찾고 불우 이웃을 돌아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찬란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가까운 이웃의 고통과 신음소리에 귀 기울일줄 알아야 할 때다.
이 한 해를 보내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면 그 동안 잃은 것도 많지만 어려움 속에서 세상을 바로 보려는 노력 속에서 나름대로 행복했다. 행복과 기쁨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역경과 눈물도 같이 한 삶에 감사 드린다. 가족과 주변 친지, 이웃들로부터 정말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는데 미처 깨닫지 못한 것도 많은 것 같다.
나무 한 그루에서 삶의 지혜를 찾고 또한 견딜 수 있을 만큼 어려움을 주시고 몇 배로 갚아주시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 드리면서 깊어 가는 겨울 밤 세모의 기도를 올리며 마음을 겸허히 비워본다.

채수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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