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조인간

2005-12-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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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사촌 형님이 한 분 계시다. 기골이 장대하고 성격이 호탕해서 항상 주변에 친구들이 들끓었다. 언젠가는 시골 장터에서 벌어진 씨름대회에서 황소 한 마리를 상품으로 받았는데 그것을 친구들과 몇날 며칠동안 읍내 술집에서 탕진했다고 한다.
그러던 형님이 20여년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말이 안통하니 무엇 하나 맘먹은 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하는 수없이 한인타운 안을 맴돌면서 마켓 일도 해보고 이삿짐센터에도 나가 일을 거들어 보았으나 힘으로는 젊은 멕시칸 친구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매일 같이 독한 술만 마셔대더니 어느 날 드디어 고장이 났다. 위경련이 일어나 병원에 입원해서 담낭수술을 받기에 이르렀다. 형님은 쓸개를 제거 당하고 난 후부터 당뇨병이 생겼다.
요즈음 의사들은 담낭이나 맹장 같은 장기들을 아무 거리낌없이 잘라낸다. 나이든 여자들의 경우 자궁은 이제 쓸모가 없어서인지 마구잡이로 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장기들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다. 아무 쓸데없어 보이는 기관들이지만 전혀 실수가 없으신 조물주의 창조 섭리를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제거해 버리는 의사들의 오만을 탓해 보고 싶다.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이 원활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체액과 혈액이 잘 순환돼야 하고 이것들을 잘 돌아가게 하려면 여러 종류의 호르몬이 요소 요소에 그때그때 공급되어야 하는데 장기들을 잘라버렸으니 뇌로부터 내려오는 명령이 중간에 끊어져서 어디에 무슨 호르몬이 필요한지를 알 수가 없어진 것이다.
형님은 제아무리 육척이 넘는 장신에 바위를 번쩍번쩍 들어올렸던 장사였다고 해도 당분이 소변으로 마구 방출돼 버리니 손발에는 힘이 하나도 없고 늘 피곤하기 그지없다고 했다. 핏속에 당분이 녹아 나오니 오장육부 어느 것 하나 성한 것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풍선으로 막힌 혈관을 확장해주는 방법으로 심장 관상동맥을 두 번씩이나 뚫어주고 얇은 망사처럼 생긴 금속 튜브를 끼워 놓았다.
당 수치가 점점 높아가더니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했다. 이어 백내장 수술을 받고 그게 잘못되는 바람에 몇 달을 고생하더니 결국은 각막까지 이식을 받았다. 쓸개, 심장, 눈, 그리고 이빨까지 떼어버리고 수리하고 다른 부속으로 갈아 끼워 놓았으니 이제는 더 이상 괴력을 발휘하던 형이 아니었다.
이렇게 인체의 각 부분을 마치 자동차 부속 갈아치우듯 하다보니 이제는 의학이 공학(생명공학)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하는 날에는 인체의 각 부분과 신경세포들이 다량 생산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몇 년도 산 어느 종족 남녀 신체의 크기와 무게 등을 잘 구분해서 필요한 인체 부위를 컴퓨터로 주문하면 다음날 UPS로 배달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장기를 몽땅 갈아치우며 ‘인조인간’이 된다면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더 오래 살게 될 것인가? 생로병사의 오묘한 진리에 순응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수명만큼만 보람있게 살아가려는 겸허한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최문항
미주한국
문인협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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