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버리고 가야할 것들
2005-12-14 (수)
12월 첫날 아침, 아내의 부탁으로 렌트비를 내기 위해 장모님이 사시는 노인 아파트에 들렀더니 파킹장에 몇 대의 버스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그 버스에는 하나 같이 한글로 쓰여진 병원과 요양원 이름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버스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는데 모두가 한인 노인들이었다. 그리고 방금 아파트에서 나온 듯한 곱게 차려 입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 버스를 타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유람을 떠나는 소풍객처럼 즐거운 표정이었다. 몸이 아프거나 불편해서 치료하러 가는 사람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문득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장모님도 한 아파트에 사는 노인들을 따라 몇 번 그런 버스를 타신 적이 있었다. 그런 날은 점심도 융숭히 대접받고 거기다가 공짜로 선물도 타오고 별로 용도가 없는 각가지 약들을 가져오셨다.
어느 날, 그런 이야기를 자랑삼아 말씀하셨다가 “사위, 딸에게 장모님이 축내게 만든 세금 더 내게 하고 두고두고 손자들에게 그 짐을 떠넘기고 싶으시냐”고 호된 질책(?)을 들은 후 몹시 서운해하며 발길을 끊으셨다.
김대중씨가 대통령 재임시절 평양에 가기 위해 5억달러란 나랏돈을 몰래 건네준 것이 드러났다. 그는 올해 초 그런 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절대로 그런 일이 없었노라고 계속 거짓말을 해왔다. 결국 들통이 나니까 통치권 차원 운운하며 역시 거물 정치인다운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국정원장이란 사람은 도청을 지시한 증거가 명명백백한 데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사실무근이라고 시치미를 떼었다. 그런 파렴치한 행위는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고 국군이나 미군에게 뒤집어씌운 김일성 집단이나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다치고 투옥된 양심세력들을 빨갱이로 조작한 군사정권의 기만성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수법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배아줄기세포 연구로 한국인의 표상이 된 황우석 박사가 연구과정에서 윤리기준을 어겼다 해서 국내외에 큰 물의를 빚고 있다. 그의 업적은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지만 윤리적으로 중대한 하자가 있다면 지성과 정직이 최고 덕목인 과학자로서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목적만 좋으면 무슨 수단과 방법을 쓰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또한 결과만 좋으면 그 과정이 어떠하더라도 용인되는 경향이 있다.
선량한 사람들을 표적 삼아 치부를 꾀하는 상술, 그만큼 혜택을 받았으면 감사할 줄 알아야지 그것도 모자라 정부재정을 좀먹는 탐욕, 국민을 속여서라도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려는 이중인격, 명예를 위해서는 도덕률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가치관의 전도 등, 바로 이런 것들이 한국을 건전한 사회와 선진국으로 진입치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이다.
좋은 일일수록 정당하게 이뤄져야지 부정한 수단, 옳지 못한 방법으로 얻고자 한다면 설사 성취했다 해도 곧 무너질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올해도 마지막 달로 접어들었다. 12월은 지난해를 되돌아보는 달일 뿐 아니라 새해를 준비하는 달이기도 하다. 금년의 끝 부분을 보내며 내가 무엇을 얻었나 하는 성과보다는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떻게 행동했나를 되새겨 보자.
새해 새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나와 우리 주변의 나쁜 것, 더러운 것을 말끔히 버리고 떠나도록 하자. 그런 출발이라면 새해도 삶을 밝게 할 많은 가능성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겠는가.
조만연
수필가·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