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단 멈춤’의 계절

2005-12-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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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구분이 분명치 않은 캘리포니아라고는 하지만, 올해는 더욱 별스런 기후 탓으로 차분한 가을을 음미하지 못한 것 같다. 잔디에 수북한 낙엽과 노랗고 붉은 단풍으로 겨우 절기를 확인하면서 12월에 들어섰다.
두툼한 목도리에 두꺼운 겉옷을 걸치고 차가운 공기에 입김이 서리는 풍경과 백설의 운치로 추위를 녹이던 따뜻함이 그려지는, 내 기억 속의 설레는 겨울철이 온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유독 12월이면 멀고 가까운 곳에서의 소식이 그리워지는데 아마도 해를 마감하면서 앞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는 까닭에서이리라. 또한 쫓기듯 달리던 긴장 속에서 생각을 추스르며 일상을 정리해보게 되는 ‘일단 멈춤’ 의 사인을 강하게 의식하는 달이기도 하다. 공식적인 행사도 분초를 가리는 다급한 일이 아니면 조금은 여유 있는 듯 느껴짐은 송년모임 등의 느긋함이 기다리는 시기 때문인 것 같다 .
연말이면 성탄카드나 연하장을 주고받던 친구의 안부가 끊어진 후 그의 죽음을 들었다. 병원 일과 가사를 빈틈없이 처리하는 능력과 성실에 많은 자극을 받았던 벗이었다. 생활력 강하며 따뜻했던 그녀의 상실은 큰 충격이었다.
소녀적 추억과 감수성이 넘치는 다정한 글을 달필로 보내주어 흐ANT하게 하던 또 다른 친우도 막막하다. 그의 생활 주변이 바뀌면서 서신 왕래가 없어진 것이다.
원초적 향수로 자리한 고국의 사연이기에 더더욱 그립고 궁금하다. 수구초심의 발로인가. 그러저러한 이유로 우편함 열 때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분명한 이유도 없이 설레는 기대로 키를 꼽으며 별다른 수확이 없어도 늘 같은 기분이 되풀이된다. 타주에 있는 가족들의 안부도 전화통화로 넉넉히 해결할 수 있는데 모양 다른 필체의 편지봉투가 한결 반갑다. 그 성의와 배려가 마음까지 즐겁게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필로 주고받는 일이 줄어들었다. 바빠서 또는 번거로워서 손쉬운 문화 기재를 이용하게 되는데 그 혜택에 다가서진 못했으나 아쉬운 대로 그의 편리함에 의존하고픈 입장이기도 하다. 허나 아직도 친필이 더 살갑게 여겨지는 것은, 문명인의 대열에 적응하기 서툰 현실의 변명이라 할 것인가. 아무튼 정성이 배제된 기계화한 형식의 감정 전달에 익숙하기엔 한참 걸릴 것 같다.
12월이다. 온정을 호소하는 구세군의 자선냄비 속에 즐거운 동참이 그득해야겠고 주의 탄생을 기뻐하는 크리스마스의 경건을 바로 깨달을 때이다.
태풍 피해의 여파로 생존의 계획조차 막연한 많은 이재민들의 목마른 기다림에도 사랑의 공급이 절실하다.
명분이 불분명해진 전장에서 대치하고 있는 건강한 영혼들의 기다림은 무엇일까. 그들의 절대적 임무수행을 위해 맡겨진 생명의 불안이, 희망을 저버릴까 두렵다. 관계의 상처에서 번지는 신음이 가슴을 후비는 악몽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뿌린 것은 별로 없지만 거두어들인 한해의 수확을 살펴본다.
스쳐간 시간 속에서 떠오르는 알찬 순간들이 언뜻 보석처럼 빛남은, 아직도 세상은 살만한 곳임이 분명하다. 작은 선행이 소리 없는 울림으로 열매 맺는 가슴 훈훈한 이야기들로, 마땅찮은 소요를 달래본다.
조금 늦었지만 외로운 분들의 기다림에 마음을 나누어 드려야겠다. 한 지음에 대한 축복을 아낌없이 베푸는 손길이 풍성한 계절을 감사한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신중히 삶의 방향을 검토하는 유익의 시간이 절실한 시기다.

이인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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