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탄의 추억

2005-12-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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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인 칼럼/송철웅 목사(헤브론교회)

깜박거린 크리스마스 불빛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마치 동화 같던 어린 시절의 추억에 사로잡힌다.
성탄절이 가 까오면 나와 누나들은 집에서부터 2킬로나 떨어져있는 교회까지 매일 밤 걸어서 연극을 준비하며 성탄의 주인공들이 되었다.
어떤 해는 요셉이 되기도 했고, 어떤 해는 동방박사가 되기도 했다.
당시도 신비한 크리스마스 추리의 불빛 은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흥분되었고, 마치 하늘을 나는 천사 같은 들뜬 기분이 되었다. 왜냐면 크리스마스 날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집안 형편이 다른 아이들에 비하여 궁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토록 풍족하지도 못했던 시골의 어린 시절, 어쩌다 붕어빵 하나를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찌라도 운수 대통하는 날인데,
크리스마스 날 아침이면 손 큰 여 집사 님들을 통하여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시루떡, 찹쌀떡, 호박떡까지 봉투째 가득가득 안겨지는 날이니 어찌 내 일생 중 가장 행복하고 흐뭇한 날이 아닐 수 있으랴!
나는 시루떡을 입에 물고 예수님의 생일 이 왜 1년에 단 한번뿐일까? 이런 생일 잔치가 일년에 몇 차례 더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용히 한탄할 때도 있었다.
그 외에도 내가 그토록 크리스마스를 목 타게 기다린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조 장로님이란 분 때문이었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그분은 한해 도 빠짐없이 큼직하고 번쩍거린 대학 노트를 몇 권씩 주시면서“꼭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잉?”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그 대학노트를 자랑 하다가 심지어는 잠잘 때도 품에 안고 잠이 들곤 했다. 너무나 아까워서 감히 그 노트를 한번 도 써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고이고이 보관하다가 결국은 훗날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나의 영원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바로 그 분이셨다.
그 후 30년의 세월이 지난 후 내가 어린 시절 자라던 그 교회를 다시 찾았을 때 그분은 이미 주님 품에 가신지 오래되셨지만 그분의 이름으로 건립된 교육관 안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이 밝게 뛰놀고 있었다 .
그때가 봄이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대 학 노트를 가지고 다가오신 성탄절의 장로님 모습이 선하게 떠올라 내 눈시울을 적시게 하였다.
그분은 성탄절이 무슨 날인가? 나에게 한번도 설명 해 주신 적은 없었지만 그분을 통 하여 나는 어린 시절 진정한 성탄절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사랑에 관하여 나에게 한번도 가르쳐주신 적은 없었지만 그분을 통하여 어린 시절 사랑을 알게 되었다.
그분은 예수님에 대하여 한번도 나에게 가르쳐 주신 적은 없었지만, 대학 노트를 주실 때마다 “꼭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축복하셨던 대로 내 비록 아직 훌륭하지는 못해도 예수님을 증거 하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종이 되었으니 그분이 이 사실을 아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분은 오늘도 나에게는 반짝거린 성탄 의 불빛 속에 영원히 살아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내가 선물을 준비해야 하고, 내가 남에게 성탄을 보여주어야 할 나이로 살아가고 있다.
반짝거리는 성탄의 불빛을 통하여 나 자신을 조용히 바라본다.
나는 진정한 성탄을 보여주는 사람인가 ? 아니면 그것 을 설명해주는데 더 능한 사람인가?
성탄은 사랑이 무엇인가를 체험하는 계절인데, 나는 그 사랑을 지식적으로 가르치는데 더 능한 사람인가? 아니면 삶 속에서 느끼고 표현하는 사람인가?
아! 성탄은 가슴 벅찬 감격의 계절인데 내 어찌 그 감사를 다 설명하고 표현할 수 있으랴!
이제는 번쩍거린 대학 노트도 아낌없이 내 낙서 장으로 쓰여지고, 어린 시절 환상의 시루떡도 내 입맛을 돋구지 못하고, 붕어빵을 보아도 군침이 돌지 않는 여유 있는 생활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어린 시절 성탄의 그 감격을 재현시킬 수가 없다.
오직 이 죄악의 땅에 구세주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 진한감동으로 내 가슴에 느껴지기 전까지는 결코 흥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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