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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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의 매력

2005-11-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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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여름 서울에 나갔을때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동창들이 졸업 25주년인지 30주년 행사를 크게 한다며 내게 마침 잘왔으니 꼭 동창회에 나오라고 야단들을 했다. 나는 중퇴생인데 했더니 모두들 눈을 흘기며 일생에 한번있는 기회인데 빼지 말고 나타나라고 설교했다. 행사 당일 다른 중요한 약속이 생겨 동창회에 안나갔더니만 나의 휴대폰에 불이 났다. 얼른 끝내고 늦게라도 동창회장에 나오라는 성화였다.
할수 없이 행사 끝나기 30분전에 남들 모두 정장하고 앉아 있는 신라호텔 볼룸에 청바지 차림으로 덜렁덜렁 들어섰는데 광고회사 회장을 남편으로 둔 동기회장 덕이었는지 그야말로 멀티미디어 화면을 동원한 프로페셔널한 프로그램 진행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동창들은 다음날 1박인지 2박인지 단체 여행을 떠난다고 했는데 여행지에서 펼쳐질 프로그램을 위해 일부 친구들은 모여서 합창 연습도 하고 춤 연습도 했다는 얘기를 듣고 동창회를 이렇게 거나하게 하는 것은 아마 한국에만 있는 현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미국에서도 졸업후 일정 기간이 흐른 다음 리유니언(reunion)이 열려 다녔던 학교 교정에서 옛애인들이 다시 만나는 것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심심치않게 나오지만 노래 연습과 춤연습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나의 이러한 막연한 통념을 바로 나의 남편이 박살을 내고 말았다. 그는 60년대 말에 당시 남학생만 받았던 보스턴 칼리지(BC)를 다녔는데 4학년을 마치며 학교에서 마련한 졸업 만찬에 참석하는 대신 몇몇 반골 친구들 끼리 모여 반만찬(anti-reunion)을 열었다는 얘기를 여러번 했었다.
오늘날에는 보스턴이란 학교 위치 때문인지 무슨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미국에서 가장 입학 경쟁율이 높은 대학의 하나가 되었지만, 60년대에만 해도 보스턴 근교의 가톨릭 남학생들이 다니는 동네 대학이었던 BC는 전국적 명성을 얻기 위해 다양한 지역의 우수 학생모집에 열을 올렸고, 뉴욕시의 가톨릭 고교에 다녔던 남편은 4년 장학금이라는 당근에 끌려 BC에 입학했다는 것인데, 반만찬의 참석자들은 모두들 이러한 프로그램으로 BC에 와서는 4년 장학금을 받으며 반골그룹을 형성한 주역들이었던 모양이다.
금년초 이들 그룹의 담배 한대 피우지않던 후배 하나가 갑자기 폐암으로 사망하자 남편은 반만찬 그룹의 동창회를 열자고 나섰고 결국 13명의 흰머리 성성한 남자들이 의기투합, 2박3일 일정으로 코네티컷 주의 산림에 위치한 휴양관에서 부부동반으로 모이게 되었다.
매사추세츠주 보건국의 수석 심리학자였던 테드가 짜놓은 프로그램을 보면 어찌나 철두철미하고 엉뚱한지 나의 동창들의 춤연습은 아주 얌전하게 보일 정도이다. 13명 전원이 대학원을 나와 의사, 변호사가 되었거나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이들은 늦가을의 뉴잉글랜드 숲속에서 물총 싸움을 벌일 모양이다. 또한 60년대 즐겨 부르던 노래들을 모아 작은 책자를 만들고 기타 반주에 맞춰 함께 모여 싱어롱을 한다고도 한다.
이들은 모임이 열리는 휴양관을 60년대 대학 기숙사 모습으로 꾸민다고 야단이며, 지난 30여년간 지나온 이야기들을 적어 서로 교환하며 킥킥 대기도 한다. “마크 그친구는 결코 결혼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예상을 깨고 결혼했다해서 부인이 누군지 몹시 궁금했는데, 이번에 부인이 참석을 못한다니 아쉽구만.” 왜 결혼 못하리라 생각했냐니까 그는 결코 샤워를 하는 법이 없었다한다. 마크라는 친구는 현직 대학교수로 미국 현대 음악사의 저명한 학자라고 했다.
나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다섯살짜리 아이처럼 들떠있는 남편을 보며 성장기의 한부분을 함께 보낸 동창생들에 대한 연대감과 지난 세월에 대한 추억의 마력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자랐거나 참으로 비숫하구나, 절실히 느낀다.
이번 연말 동창회 시즌에는 그간 동창 모임에 한번도 안나갔던 사람들도 못이기는척 한번 참석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김유경
campwww.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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