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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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다녀가는 것 가운데 바람 아닌 것이 있으랴’

2005-11-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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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의 달’로 현대문학상, ‘해변의 길손’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을 수상하며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로 자리매김한 저자의 주옥같은 70여편의 산문을 싣고 있다. 치열한 작가로서의 지난 삶에서 얻은 깨달음과 바닷가에서 인생을 관조하면서 느낀 삶의 의미를 바탕으로 한 세상과 삶의 경계에 선 노작가의 깊고 겸허한 인생론을 들려준다.
자기 식대로 마구 세상을 살아보려 몸부림치곤 하던 젊은 시절의 기억들, 그리고 삶을 겪어내면서 얻은 깨달음 뒤에 내놓는 고백들은 60여 년간의 지나온 삶에 대한 회고나 허무어린 탄식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사유를 담은 인생론이며 생을 더 열정적이고 자유로운 정신으로 살아가게 하는 보다 능동적인 지혜를 담고 있다.
저자는 몇 년 전 복잡한 서울 생활을 청산한 후 고향 장흥 바닷가에 ‘해산토굴’이라는 글집을 짓고 우주의 율동에 맞춰 살아가는 모습을 이 산문집에서 상세히 그리고 있다. 언덕 위 500평 밭을 일구고 잡풀들과 싸우는 것을 여름 날의 사냥거리로 삼았다. 그렇게 일군 차밭을 아침마다 정성스레 관리하고 아침밥을 먹은 다음 서재로 들어가서 머리가 녹슬지 않게, 가슴이 흐려지지 않게, 삶과 글에 대한 열정이 시들어지지 않게 자신을 다진다. 무력하고 힘들어질 때면 바닷가 산책으로 침체한 몸과 마음을 활성화시키고 가슴이 답답할 때는 뒷산을 오르며 마음을 가라앉힌다는 그가 하루하루 다져온 예리한 통찰들은 독자들에게 쉼이 되고, 삶에 대한 해법이 된다.
우리의 일생은 자기 가두기와 풀어놓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기를 가두어 놓고 자기를 기르는 것이며 참을성있게 자기를 잘 기르면 스스로의 몸과 마음이 꽃이 되고 속에 보석같은 앙금이 가라앉게 되고, 그것은 빛과 향기를 발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모든 페이지마다 아름다운 은유로 우리의 삶을 향기롭게 표현한다.
소박한 일상의 풍경 속에서 발견하는 생의 참된 가치, 삶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들은 사는 데 무력해지고 지친 사람들에게 갯내음 가득한 바다보다 더 귀한 마음의 위로가 된다.

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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